[아름다운사회] 나이를 먹어 없앤들

[김재은 대표]

내가 원해서 세상에 온 것은 아니지만 60년의 시간을 살았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고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은 ‘늙었다, 나이 들면 다 그렇지 뭐’등 이런 말들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무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이 짠해지기도 하고, 나의 이야기로 느껴져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마음을 후벼파기도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강물이 흘러가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나이 듦이 ‘전혀 자연스럽지 않게’ 삶의 여러 가지 감정들을 자극해서 마음의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야’라고 외치며 저항해 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끝내 사라질 텐데 뭘 그리 집착하느냐며 그냥 넘겨버리기도 한다.
어제 일이다.
이른 아침 조찬모임을 마치고 뒤풀이로 차 한 잔 나누는데 늘 청춘으로 살아가는 80대 후반의 대선배가 ‘나이를 먹는다’로 말문을 연다. ‘나이를 먹기’ 때문에 자신은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보다 나이가 든 어른을 잘 모셔야 젊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어른과 함께 하면 자신은 늘 ‘젊은이’가 되기 때문이란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그러고 보니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를 ‘나이가 들다’로 이해하는 대신 먹는(eat) 것, 먹어 해치우는 것으로 이해하니 나이 듦이 조금은 가볍게 다가온다.
사무엘 울만은 ‘청춘’에서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고,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나이를 먹어치워 ‘젊음’을 확보하는 것도 좋지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는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나이는 일상의 깨어있는 마음으로 ‘가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90대의 파릇파릇한 청년이 있기도 하고, 30대의 골수 꼰대도 있기 때문이다. 나이 이길 장사 없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
나이는 못 속인다 등등 수많은 속담들이 ‘나이’를 왈가왈부하고 있지만 나만의 ‘나이 철학’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여기에 이르니 ‘나이 철학’은 그대로 ‘삶의 철학’이 될 수밖에 없음에 무릎을 친다. 나잇값 못하는 어른들이 즐비한 것도 어쩌면 삶의 철학의 부재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요즘 60이 되었다고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며 호들갑의 세상에 살고 있다. 순간 60년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앞으론 어떻게 살 것인지도 생각해 본다. 이제 60은 지난 시간의 성찰 속에 새로운 삶의 시작점이 되어야 함을 새긴다. 나이를 먹어 치워 물리적 숫자를 줄이는 대신에 나이의 기초인 일상(하루)을 잘 가꾸는 삶 말이다. 사무엘 울만이 말하지 않았던가.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