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신과 함께

[정운 스님]

10여 년 전 잠깐 중국에 머물 때, 연속극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남녀 주인공들이 과거 500년 전에 만났던 연인이었는데, 현생에 또 인연이 되어 얽히는 내용이었다. 근자에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신과 함께>는 전편에 이어 속편까지 나왔다. 망자가 지옥들을 거치는 과정을 표현하면서 과거ㆍ현재ㆍ미래를 오가는 것을 주제로 하였다. 인간답게 살지 못하면, 죽어서 49일을 지나는 동안 지옥을 체험한다는 권선징악이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불교 용어로 말하면, 인과에 따른 윤회사상이다. 모차르트가 5세 때부터 천재적으로 피아노 건반을 쳤고, 7세 아이가 음악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작곡을 한다. 또 우리나라에서도 어린 10대 학생이 한 번도 배우지도 않고 그 나라에 가보지도 않았는데, 여러 개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철학과 종교가 다양한 세상에서 윤회 관념을 부정하는 이도 많은데, 이런 일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예술이나 체육, 학문 등에 뛰어난 경우는 현 생에서 학습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랜 과거 생부터 쌓은 습[경험]이라는 점이다. 필자도 종종 경험하지만, 수강생 중에 공부를 쉽게 습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혹 어떤 이는 전혀 관심 없는 이도 있다. 이 또한 과거 전생에 습득한 경험에 의해서라고 본다. 이를 불교에서는 선근善根을 심어 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나쁜 습도 그러하다. 성범죄로 감옥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사람도 어찌 보면, 과거 전생에 익힌[발달된]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죄가 밉지, 인간적으로는 안쓰럽다].
현재 살고 있는 인생이 끝이라고 보지 않는다. 곧 지금 이 생에 심어놓은 것들이 다음 미래 생의 결과이다. 즉, 현생에 자신이 열심히 노력한 것들은 다음 생에는 남들보다 훨씬 뛰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윤회 관념에 입각해 불교에서는 자살을 큰 죄악이라고 본다. 이 생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끊는다면 다음생에 이 보다 더 큰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한 생을 완결한 뒤에 다시 새로운 삶을 부여받는 꼭짓점이다.
안중근(1879∼1910)의사는 하얼빈에서 일본 이토를 저격한 일로 사형을 선고받고, 1910년 뤼순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형무소에서 사형 집행인이 집행 직전에 의사에게 ‘무엇을 꼭 하고 싶냐?’고 물었다. 이때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5분만 제게 시간을 주십시오. 아직 미처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현생에 공부가 바로 미래로 연결된다’는 정신적 사유라고 본다. 안중근 의사께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미래로 연결됨이요, 현재의 삶 또한 과거의 전생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지 않았을까? 불자가 아닌 분들은 필자와 생각이 많이 다를 수 있다. 불교 윤회설을 믿으라거나 인과설을 주입시키려는 뜻은 전혀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얼마나 소중하며, 삶의 과정 과정을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는 마음자세를 갖자는 의도로 이 원고를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