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널 위해 가꾼 꽃밭에서
[김민정 박사]
한 계절 햇살 품어/ 초록을 산란한 공터//
널 위해 가꾼 꽃밭을/ 너 없이 둘러보다//
석양의/ 고양이처럼/ 고즈넉이 돌아선다
꽃그늘과 초록 물결/ 밭귀까지 따라 나와//
멀리 안 나갑니다/ 배웅하며 격려해도//
너 없이/ 돌아선 길은/ 노을처럼 젖는다
- 정병기, 「널 위해 가꾼 꽃밭에서」 전문
화단의 꽃들이나 길가의 꽃들이 이제는 국화, 맨드라미 등 가을꽃만 남기고 거의 진 상태다. 시인의 ‘한 계절 햇살 품어/ 초록을 산란한 공터// 널 위해 가꾼 꽃밭을/ 너 없이 둘러보다’란 표현을 보면서, 여기서 시인이 지칭하는 ‘너’는 사랑하는 연인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자녀일까 궁금해졌다. ‘너’로 지칭되는 이가 누구든, 그 사람이 없이 꽃밭을 둘러보는 화자의 모습은 쓸쓸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돌아보다 ‘석양의 고양이처럼 고즈넉이 돌아선다’고 한다. 역시 쓸쓸한 모습이다. 내가 보고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해 만든 꽃밭이라고 했는데, 너 없이 혼자 본다는 것은 너에 대한 그리움을 증폭시키며 현재의 나를 더욱 고독하게 할 수 있다. 둘째 수에 오면 계절과 노을이 깔리는 저녁시간이 겹쳐 ‘너 없이/ 돌아선 길은/ 노을처럼 젖는다’며, 너에 대한 생각은 노을처럼 번져나는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너’가 연인일 수도, 자녀일 수도 있다. 이 시조는 꽃밭을 둘러보면서 널 위해 가꾼 꽃밭인데, 정작 너는 못 보고 나만 둘러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쓴 작품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여기서 너를 사랑하는 자녀라고 생각하니, 며칠 전 이태원 참사의 모습과 겹쳐지며 너무 아프게 다가온다. 다 키운 자녀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어떠하며, 또 연인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참으로 믿기지 않는 참담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건강하게 잘 자라던 자녀가 하루아침에 이런 참사를 당한 부모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세상과의 인연이 짧아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인간의 평균 수명을 다 못 채우고 젊음도 만끽하지 못한 채 사라져간 젊음이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다. 하늘나라에서, 천국에서 좀 더 편안하기를, 행복하기를 기도할 뿐이다.
어느새 가을이 깊어간다. 요즘 바쁜 일이 있어 지방에 자주 다니다 보니 고속도로 양옆으로 단풍 든 산들이 참 아름답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가을을 한꺼번에 왕창 느끼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가을은 아름다운 계절이구나 하고 탄복을 하기도 한다. 터널이라도 지나게 되면 내 앞으로 와락 달려드는 단풍, 왜 가슴이 이렇게 설레는 것일까. 또 한 번의 가을이 이렇게 깊어가고 있다. 앞으로 내가 맞을 수 있는 가을이 몇 번이나 될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가을이 깊어감을 안타까워해야 하는지, 아니면 만끽하며 이 가을을 즐겨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지나간 세월도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았으니 다가올 날들도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사는 길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봄이 왔다 가는지, 가을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산 세월이었지만, 순간순간 열심히 살았고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아왔다. 앞으로도 현실에 충실하며 언제 내 삶이 끝나더라도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