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 신년과 구년

바티칸시티 내에 있는 박물관을 방문하는 분들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한 고대 로마 신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신상의 얼굴은 서로 반대의 방향을 항하고 있는 양면 얼굴의 신상입니다. 이는 처음과 마지막 그리고 시작과 변화를 상징하는 로마인들의 야누스 신상입니다. 그들은 적어도 1년에 한 번씩 자신을 돌아볼 필요성을 깨달은 것입니다. 1(January)이란 명칭도 야누스(Janus)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마치 야누스의 얼굴처럼 다시금 우리는 또 한 해를 떠나보내고 새롭게 다시 솟아오를 신년의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시간이나 세월이란 더 빠르고 느린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과학적 원칙이란 현미경으로 확대하여 들여다본다면, 미세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인간들에게 그 어떤 영향을 미칠 만큼의 차이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 지구는 24시간마다 자전을 계속하며, 365일마다 태양주위를 공전합니다. 그래서 공적인 달력(Calendar) 사용도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 미 캔터기 주를 휩쓸고 지나간 토네이도나 또한 말레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태풍의 그 위력과 속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세는 세월을 이 같은 초강력 속도로 날아가는 강풍처럼 비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 심에 놀라나이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90:3-12)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라고 모세에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3:13,14). 때문에 모세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무궁하신 존재이신 하나님이심을 곧 계시로 깨달은 것 같습니다. 또한 그는 우리 인생의 그 출발도 영원하신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 세대도 대대로 존재해 오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스스로 영존하시는 분)이시니이다."( 90:1,2)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이와 같은 본질적인 시간개념을 바로 올바로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자신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고귀하고 결코 반복될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창조주로부터 허락받은 자신의 인생의 귀중함을 바로 깨닫지 못하게 될 때 그는 방종하고 죄악생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쉬지 않고 신속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자신의 인생을 무의미한 시간들로 낭비하는 것은 결코 우리 창조주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처럼 주께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얼마나 합당한 기도입니까? 사도 바울 역시 이 같은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5:15,16)

이 구절 가운데 '자세히 주의하라'(Be very careful)는 단어의 원어 적 의미는 '정확하게'(accurately)라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동의 기준을 그냥 조심하는 정도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행할 것을 항상 '올바로' 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는 곧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바로 깨닫는 삶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이제까지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술과 여자로 방탕하던 어거스틴은 인근에서 어린 아이들의 '펼쳐보라! 펼쳐보라!'는 노래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는 직감적으로 '말씀을 열어보라'는 주의 음성으로 깨닫고 그가 성경을 펼치게 될 때 이 같은 말씀이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시기를 알거니와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 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13:11-14)

한 탕아의 인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주 앞에 무릎을 꿇고 그칠 줄 모르는 눈물과 함께 회개하며 자신의 그릇된 길에서 즉시 돌아서서 사랑의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신년이 여러분들을 새로운 인생으로 바꾸어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 안에서 새롭게 자신이 다시 변화되지 않는 한 구년은 결코 진정한 신년으로 바뀌어 질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을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실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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