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 친구와 배신자

"(곧 그가)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말하라."( 26:49-50) 복음서 기록 중에 가장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단테는 그의 신곡 중에서 배신을 인간 최대의 악으로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는 9개 층들로 지옥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최하층에는 특별히 자신의 친구 시저를 배신하고 암살한 배신자 브루투스와 또한 자기 스승의 배신자 가룟 유다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슬프게도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다면 제게 좋을 번 하였느니라."고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14:21). 또한 계시록에서는 사탄을 가리켜 "형제를 참소하던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2:11). 그 말씀은 곧 친구를 배신하는 자는 바로 사탄의 행위를 따르는 자임을 강하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진정한 친구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요? 친구란 말의 정의에 가장 중요한 그 요인은 바로 순수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우정이란 불가능하며 진정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친구(friend)의 반대어가 원수(enemy)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나단과 다윗간의 우정스토리는 진정한 친구의 대표적 그 표본사례입니다. 요나단 없는 다윗의 생존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이들은 오히려 경쟁적 상대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겸손했고 순수했고 진정으로 다윗을 아끼고 그의 유익을 더 귀히 여겼습니다(고전 13:5). 이처럼 요나단은 진정으로 사심 없는 비이기적인 사랑으로 일관했습니다. 다윗을 위해서는 왕자라는 자신의 존귀한 신분까지도 내려놓을 줄 아는 깊은 아량과 고결한 인품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같은 요나단의 인품을 통해 가장 완전하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금 상기하게 됩니다. 다윗은 이 같은 생명의 평생 은인 요나단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으며 백성들로 이 같은 애가를 널리 부르도록 했습니다.

  "오호라...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 하였도다."(삼후 1:26)

  만일 어느 날 자신이 관 속에 누워있을 때 그 관 앞에서 '오호라 나의 소중한 친구여!'라고 슬퍼해 줄 수 있는 그 같은 진정한 친구를 가진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나는 특별히 우리 주 예수님의 그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그는 비록 자신을 배신하여 원수들을 이끌고 와서 간교한 배신의 키스를 하며 "랍비여 안녕하십니까?"라고 말하는 유다를 향하여 "친구여!"라고 그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유다일지라도 그 순간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진정한 회개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죄를 뼈저리게 뉘우쳤습니다. 곧 그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로 찾아가서 그가 받은 은 삼십을 되돌려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27:4)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매어 그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배신자 유다는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의로우신 분으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분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역사 앞에 증거 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유다 자신은 그 '무죄한 그리스도의 피'를 오히려 팔아버림으로(배신함으로) 스스로 영원한 멸망을 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무죄한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과 그 능력을 진정으로 믿고 계십니까? 엘리사 호프만 찬송 시인은 다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을 노래합니다.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더러운 죄 회개하는 능력을 그대는 참 의지하는가?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그러나 진정으로 그를 구주로 믿지 않던 자들은 오히려 이 같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그를 '죄인의 친구'라고 조롱했습니다( 11:19, 15:1-2). 그러나 그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15:13) 그리고 말씀뿐만 아니라 친히 그는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죄인들을 위해 모두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그 분을 진정으로 구주로 믿고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리라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14-15)

  주 예수께로부터 "너희는 나의 친구라!" 불릴 수 있는 자들은 얼마나 복된 자들입니까! 그리고 날마다 이와 같은 친구 앞에 나아가 항상 내 삶의 모든 짐을 내어 맡기며 괴로울 때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자의 삶은 얼마나 복된 삶입니까! 여러분은 이와 같은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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