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 쓴 물과 단 물

인천 출신들에게는 짠물내기란 별명이 따름입니다. 인천의 짠물은 고대사에서도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기원전 약 40년에 북부여왕의 핍박을 피하여 졸본성에 한 출중한 무인 주몽이 나타났습니다. 이에 졸본왕(추장) 연타발은 역시 뛰어난 여걸이었던 자신의 3째 딸 서소노를 주몽과 결혼시킴으로 고구려 건국에 크게 공헌하게 됩니다. 그러나 서소노는 이미 우태와 혼인하여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낳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몽 역시 서소노의 도움이 절실함을 잘 알고 있었음으로 그녀와 혼인을 하고 그녀의 두 아들들도 왕자로 받아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주몽에게는 이미 부여의 한 여인과 혼인하여 아들 유리를 낳은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부여를 탈출할 때 그 아내와 아들은 그대로 남겨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훗날 동명왕의 친 아들 유리가 아버지의 부러진 칼을 증거물로 들고 아버지를 찾게 됩니다. 이에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은 그 칼의 증거를 보고 유리가 친자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리를 자신의 후계자로 정하게 됩니다.

이에 서소노는 자신의 두 아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장남 비류는 오늘 날 인천 지방 미추홀에 정착하게 되었고 온조는 오늘 날 경기도 광주 위례성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추홀은 땅이 습하고 물 짜서 비류는 불평하는 그의 백성들을 이끌고 위례성에 와 보니 아우 온조는 백제의 시조가 되어 백성들과 함께 평온히 살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인천의 물은 그 맛이 찝찔하여 마시기가 매우 거북하고 비누거품도 잘 일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이야 수돗물을 먹는 시대임으로 과거 1950년대처럼 짠 우물물을 마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천사람들이 짠물내기란 별명을 듣는 이유가 전적으로 수질의 짠맛 원인만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인천은 항구도시로 발전된 곳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개성과 더불어 상업이 발달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재리에 밝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짠돌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야고보는 이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짠 물을 함께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맺으며 또한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3:11-12)

이는 샘의 원천을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그 같은 샘의 원천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심성은 본래 복잡 미묘한 것이 사실이지만, 마치 무화과나무면 무화과나무가 되어야 하고 감람나무면 감람나무가 되어야 하듯이 한 마음을 가지고 다른 물을 내는 샘처럼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당대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에 대해 예수님은 엄히 책망하십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그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안에 쌓은 악에서 그 악한 것을 드러내느니라.”( 12:34-35)

솔직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때로는 매우 선한 말을 하다가도 또한 다른 한 순간에는 매우 악한 말을 서슴없이 쏟아냅니다. 우리가 깨끗한 병에 물을 부어 놓고 얼마 후에 그 컵을 드려다 보면 아주 맑게 보입니다. 그런데 젓가락을 넣고 그 물을 휘저은 후 그 컵을 들고 밝은 빛에 비춰보면 그 물은 불순물들에 의해 혼탁해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도 일상적일 때는 깨끗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마음을 휘젓는 일이 생긴다면 곧 그의 입에서는 불순물들이 마구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더러운 욕설과 저주와 악담이 쏟아집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외관상으로 거룩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 마음속은 근본적인 악의 쓴 뿌리들로 가득함을 그는 간파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같은 우리 인간들의 악한 마음 가운데 들어 오셔서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진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첫 이적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이적입니다. 이는 창조주만의 능력입니다. 악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실 수 있는 기적도 이 같은 우리 구주뿐입니다. 히브리서는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purged our sins)을 마치시고 높은 곳에 앉으셨느니라.”( 1:3) 또한 영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냐?” 말씀합니다(9:14).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는 이 같은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으로 정결케 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그 능력만이 더러운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며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흠 없는 피로써 자신의 모든 죄를 사함 받으신 체험이 있으십니까?(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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