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 모방종교와 신앙

하나님의 교회와 신자들이 바른 진리를 알지 못하고 그릇된 곁길로 빠지게 될 때 얼마나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되는가 하는 그 실례들을 우리는 성경에서 배우게 됩니다. 남왕국 유다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의 선민들로서의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계속 보존시키기 위해 선별된 나라입니다. 그러나 남왕국도 그 중반기를 넘어서면서 그 출발부터 그릇된 길로 빠져버린 북왕국보다 별반 나을 것이 없는 타락의 내리막길로 서서히 빠져들어 가는 모습들을 성경은 우리 앞에 생생하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역사는 현세 우리들을 위한 거울이라 했습니다. 또한 그 거울은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도록 하는 교훈적 교과서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역사적 교훈을 거울로 삼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도 곧 자신의 모양을 돌이키지 않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1:23-24).

요담은 유다 10대 왕으로 부친 웃시야의 뒤를 따라 16년 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선한 왕이었습니다(왕하 15:34). 그리고 요담의 뒤를 이어 아들 아하스는 20세부터 유다 11대 왕으로 16년을 통치하게 됩니다(왕하 16:1,2). 그러나 아하스는 부친 요담처럼 정직히 여호와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통치기간 동안 유다는 인근 국들 중에 가장 약체 국이었습니다. 아람 왕 르신과 북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가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정복에는 성공하지 못하였으나 유다는 르신에게 그의 나라 일부를 빼앗겼습니다. 이와 같은 외적의 위협을 느낀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구원을 요청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아하스는 자신의 왕궁 곳간의 은금을 모두 예물로 앗수르 왕에게 바치며 그의 사자를 통하여 비굴한 처세를 서슴치 않습니다.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7). 이조시대 인조가 병자호란에 굴복하여 청태종 앞에 엎드려 적국 왕의 신하임을 고백해야만 했던 치욕적인 역사가 얼핏 스칩니다.

하나님 백성의 군주가 이처럼 이방 군주 앞에 스스로 굴종적이고 자기비하적 태도까지 보이다니요하나님께로부터 "만일 너희가 내 말을 순종하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고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19:5) 약속을 받은 백성들이 어쩌다가 나라꼴이 이 모양으로 까지 이르게 된 것은 그들 스스로 자기 보호자 하나님을 버린 까닭입니다.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은 아하스의 금은보화뿐만 아니라 자신을 한껏 치켜세워주는 아하스의 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곧 그의 군사를 몰아 단번에 다메섹을 치고 그곳을 지배하던 아람 왕 르신을 죽이고 백성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이와 같은 원군에 감사하여 아하스는 단숨에 다메섹으로 달려가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을 만났습니다. 인조처럼 그가 앗수르 왕 앞에 굴종의 예를 바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섬기기를 포기한 이 악한 왕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메섹 성에 세워놓은 한 단(altar)의 발견이었습니다. 본래 이단들일수록 자신들의 성전을 더욱 화려하게 세우려 하듯이 하나님을 저버린 북왕국이 세워놓은 단은 아하스의 온 마음을 빼앗을 만큼 실로 웅장하고 화려했습니다. 아하스는 즉시 그 단의 구조(design)와 모형(pattern)을 그대로 그렸습니다. 또한 그 단의 화려한 장식(workmanship)까지도 그대로 복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습니다. 왕으로부터 그와 같은 새로운 단의 전경과 도면 복사를 받은 제사장 우리야 역시 아무런 이의 없이 왕이 도성으로 다시 귀환하기 전 서둘러 예루살렘 거리에 그 단 제작을 완성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다시 귀환한 아하스는 그 단의 완성을 기뻐하며 마치 자신의 위대한 업적이라도 성취한 듯 만족히 여기며 풍성한 번제물을 그 단 위에 바치었습니다. 이것은 아하스가 어린 시절 자신의 부친이 여호와께 행하던 규례들을 그대로 흉내 내여 마치 그 새 단을 여호와의 제단처럼 새로운 종교규례를 스스로 만들어 범국가적 종교의식을 시행하도록 했습니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서 단을 보고 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자기의 번제와 소제를 불사르고 또 전제를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단에 뿌리고 또 여호와의 앞 곧 전 앞에 있던 놋단을 옮겨 새로운 단과 여호와의 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단 북편에 두니라 그리고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하여 이르되 아침 번제와 저녁 소제와 왕의 번제와 그 소제와 모든 국민의 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를 다 이 큰 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라."(왕하 16:12-15) 명했습니다. 외형상으로는 여호와 앞에서의 레위 제사장들의 제사와 다름이 없어 보입니다

영적으로 타락한 군주와 또한 세속적으로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이 보여주었던 근 1000년 동안의 기독교 역사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거듭남으로 영적 새 생명이 없는 신앙은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들이며"( 3: 1) 이러한 자들로 가득 찬 이름뿐인 교회들과 신앙인들은 모두 사탄이 뿌려 놓은 가라지들 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이십니까? 역사의 거울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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