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 죄와 복음(sins and gospel)

예수께서 당대 유대인들 모두가 혐오하며 죄인으로 기피하던 세리 마태를 불러 자신의 제자로 택하셨습니다. 이에 마태는 주저하지 않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연회를 베풀고 자신의 친구(세리)들을 초청하고 예수님을 그 자리에 모셨습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이 같은 그들의 말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9:12-13)

우리 인간은 언제나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때문에 누구에게나 의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는 이처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 모두가 죄 없는 의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 필요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들 중에 '나는 죄인이 아니다'라고 장담할 수 있는 분이 있을 까요?"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라'의 저자 김상복 목사는 책의 서문에서 우리 인간의 본질적 죄인의 상태를 이처럼 고발합니다.

"울어도 별 수가 없다. 결심해도 어쩔 수 없다. 몸부림쳐도 할 수 없다. 노력해도 안 된다. 방황해도 해결이 없다. 잊어버리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최고의 석학이라도 마찬가지이다. 무지한 사람도 꼭 같다. 가슴을 쳐도 해결할 길이 없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누구나 예외가 없다. 결국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날 때부터 공통적으로 다 갖고 있는 문제이다. 아름다운 미스 유니버스나 화려하고 좋은 옷을 입은 성공적인 기업가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누구나 죄성을 갖고 태어난다. 인간은 죄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얼룩진 점을 갖고 태어난 표범이 자기 몸의 얼룩점을 스스로 제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본래의 우리 인간은 죄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 인간을 타락시켜버린 이후 죄는 우리 인간에게 심각하게 감염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전 인류에게 그 죄를 감염시켜버렸습니다( 5:12). 그러므로 욥은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15:14) 고백하며, 다윗 역시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내 모친이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51:5)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14편은 이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 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14:2-3, 참고: 17:9)

바울도 이를 인용하여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3:10-12)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느니라."( 3:23) 했으며,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18:20) 에스겔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결국 "죄의 삯은 사망이라."( 6:23) 성경은 정죄합니다.

우리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앞에 모든 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다윗은 "내가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32:5) 고백합니다. 솔로몬 역시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28:13) 충고합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두 사람'의 예수님 비유 역시 죄 사함의 유일한 길은 회개뿐임을 강조하시는 진리입니다.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18:13)라고 고백한 세리는 결국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습니다. 여기에 기쁜 소식 곧 '복음'이 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도다. 내가 죄인의 괴수로다."(딤전 1:15) 또한 바울은 구체적으로 복음을 이처럼 정의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느니라."(고전 15:1-5)

바울 자신은 당대 가장 정통 율법주의자였으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정으로 깨닫게 될 때 스스로 죄인임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3:9) 분명히 고백합니다. 역사 이래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2:16, 3:20). 율법은 우리를 참된 복음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는 죄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마침내 우리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은혜의 구원을 선물을 얻을 수 있는 길로 안내합니다( 2:8-9). 친히 자신의 몸을 우리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받쳐주신 구주를 깨닫고 마음 가운데 자신의 주와 구주로 그를 영접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구주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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