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 허수아비와 참새 떼들의 단상

정든 고국을 떠난 지도 어느 듯 45년이란 세월이 이미 흘러가 버렸지만 종종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한 폭의 화면처럼 아련한 회상 속으로 나를 이끌 때가 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 1950년대는 80퍼센트가 농경시대였습니다. 텃밭과 논에서 나는 각종 곡식들은 우리의 주식 일뿐만 아니라 생필품을 구입하는 가계수입원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 해 농사가 풍년이면 그만큼 풍족할 수도 있었고 흉년일 때는 실생활에도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흡족한 비와 충분한 일조량은 농부 자신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섭리이기 때문에 농민들이야 말로 늘 하나님을 절실하게 의지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불행이도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대신 자신의 조상들의 은공이라 믿어왔습니다. 그래서 수확한 햇곡으로 정성스럽게 제사상을 차리고 그들의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추석이란 우리 고유명절의 그 유례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미국의 선조 청교도들은 그 다음 해 자신들이 새 땅에서 수확한 풍성한 추수로 인하여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는 전통적인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의 유례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농부는 아니지만 여러분들은 누구의 은혜로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농사 성공의 사이클에는 좋은 종자, 풍족한 물, 뜨거운 햇볕, 농부의 땀이 함께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러나 도시가운데 사는 분들은 한 여름 무더위를 견디느라고 불평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농부이셨던 부모님들은 뜨거운 여름 볕 속에서도 쉬지 않고 논과 밭으로 나가 김을 매고 흙을 북돋아주셨습니다. 과수원을 하는 어느 지인 역시 과수원 농사도 가물면 과수들에게 물을 대거나 뿌려주어야 하고 너무 비가 많으면 물을 빼어야 하는 등 여름 내내 땀 흘리기를 쉴 틈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곡식 한 톨, 과일 한 개를 먹을 때도 농부들의 이 같은 노고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 추억들 가운데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이 '허수아비와 참새 떼'들에 대한 추억들입니다. 야생 짐승들 가운데 특히 참새들은 바로 우리 인간들 곁에서 살아가는 날짐승들입니다. 참새들은 밭이나 논의 곡식들을 대개 주식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떼를 지어 논밭으로 달려드는 참새들과 농부들은 전쟁을 치뤄야 합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 중에 하나가 허수아비 상입니다. 헌 옷가지를 걸치고 바람에 펄럭이는 그 허수아비 상은 어린 우리들과 함께 놀아주는 들판의 정다운 친구와도 같았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58년에서 60년대까지 중국대륙에는 매우 심한 가뭄으로 인한 대기근사태로 당시 약 4천만 명의 농부들이 아사되었다고 전합니다. 당시 중국 공산당지도자였던 마오쩌둥(모택동)은 중국 대평원이 있는 사천 성을 방문했을 때 무수한 참새 떼들이 몰려들어 농작물들을 먹어치우는 광경을 발견하고 몹시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그가 곧 벌린 국민적 대운동이 '참새 섬멸작전'이었습니다. 결국 약 2억 마리의 참새들을 퇴치시키는데 그들은 성공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곡식생산량은 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심각했습니다. 참새 떼들이 사라진 들판에 메뚜기 떼들의 기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참새는 이 메뚜기들을 잡아먹는 이로운 새입니다. 그러나 참새가 사라진 세상을 메뚜기들이 점령해 버렸던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펄 벅(Pearl S. Buck) 여사의 장편 소설 '대지'(The Good Earth) 중에서 메뚜기 떼들의 농촌 습격광경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식물성 메뚜기 떼들이 휩쓸고 지나간 들판은 모든 농작물들이 사라진 폐허처럼 변합니다. 마오쩌둥은 비로소 참새 떼들의 이로움과 그 고마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련 연해주로부터 20만 마리의 참새들을 긴급 수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참새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 속에도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 나사렛 들판에서도 흔한 동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도 이들의 가치와 그 존재의 고귀성을 몰랐지만 예수님만은 결코 그들의 존재가치를 간과하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제자들에게 이처럼 깨우쳐주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느니라."( 6:26) 특히 "너의 천부께서 (그들 참새들을)기르시느니라."는 말씀은 매우 깊은 의미를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께서는 참새들에 관해 계속 놀랍게 교훈하시고 있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로마동전)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10:29-31) 

만일 이 같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와 자비와 사랑을 모르고 살아가는 자라면 그는 참새보다도 가치 없는 자들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10:32-33)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들에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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