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

17년간이나 무디성경학교(MBI) 6대 프레지던트와 챈슬러를 역임한 조지 스위팅(George Sweeting) 박사의 부친은 스코틀랜드계 이민자로 비록 많은 정규교육을 받은 분은 아니었지만 벽돌공이라는 힘든 노동을 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이끌어 가면서도 일지기 무디를 통해 복음을 듣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엄격한 신앙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는 훌륭한 신앙적 가장이었습니다. 스위팅 박사는 자신의 부친을 회상하며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라는 이와 같은 감동적인 글을 남겼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가정 안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이란 오늘 날과는 많이 달랐다. 나의 부친은 우리 온 가족의 부양자요, 보호자요, 또한 영적 인도자이셨다. 그는 우리 가정의 수호자로서 늘 온 가족을 굳게 결속시키며 또한 날로 성장해 가는 자녀들의 모든 필요를 항상 공급하며 영육 간으로 그들 모두를 보호하는 역할을 잘 담당하려 애쓰셨다. 또한 그는 자신이 가정의 영적 인도자라고 늘 생각하셨고 때문에 때때로 자녀들의 훈육을 위한 징계가 필요할 경우에는 종종 이처럼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집의 영적 머리로서 하나님 앞에 내 가족에 대해서 보고를 드려야 된다는 사실을 유념하며 너희에 매를 대겠다." 아버지께서 이처럼 말씀하실 때면 우리 자녀들은 항상 정신을 바로 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비록 결점이 아주 없는 분은 아니셨지만 매우 근면하며 일을 조직적으로 잘 처리하셨고 또한 매사에 늘 진지하신 분이셨다. 그는 훌륭한 아버지가 되기 위한 특별한 교육이나 또는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어떤 책들을 읽어본 적이 없는 분이셨다. 다만 자신은 결혼을 한 까닭에 여섯 자녀들의 아버지가 되었을 따름이라 여기셨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자주 성경구절들을 읽어 주셨지만 구체적 설명을 해 주신 적은 없었다. 대신 그는 가정생활 매사에서 친히 하나님의 사랑을 늘 모범으로 보여주려 애쓰셨다. 이처럼 부친은 우리 집의 엄연한 가장이셨다. 그 누구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자가 없었다.

아버지는 간혹 화를 내실 때가 있었는데 특히 저녁 식사 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성경을 읽는 시간에 우리 형제들이 킥킥거리며 웃음소리를 낼 때였다. 부모님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오신 분들이셨기 때문에 이 같은 언어적 문제는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우리들에게 아버지의 스코틀랜드식 억양들은 늘 우리를 웃기게 했던 것이다. 또한 아버지는 우리들의 어떤 실수에 대해서도 철저하셨고 우리 자녀들도 아버지의 명을 어기면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생활은 규칙적이셨으며 지금도 아버지가 저녁식사 후 매일 밤 앉으시던 소파 곁에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신문을 그가 읽으시던 모습을 회상하곤 한다. 우리 식구 중 그 누구도 아버지가 읽으시기 전에는 감히 그 신문을 볼 수가 없었다. 특히 우리 부모님들의 이민 초기시절은 미국의 대 공황기였기 때문에 나의 부친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모두가 엄청난 경제적 혼란 속에서 무척 고생들을 하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날로 늘어가는 식솔들을 부양하기 위해 나의 부친께서 겪으셨던 그 고충은 어떠했으랴! 나의 아버지는 평생 일만 하셨고 휴가라곤 가 보신 적이 거의 없으셨으며 별로 저축한 돈도 없었다. 때때로 아버지는 스스로 독백을 하시곤 했다.

"주님께서 분명히 나 같은 자에게는 재물을 맡기실 수가 없으셨던 거야" 그러므로 우리 식구 모두에게 있어서 경제적 낭비는 금물이었다. 어느 방이나 전등불은 하나만 켜야 할 만큼 철저했다. 그러면서도 나의 부친은 남에게 빚을 지는 것도 지극히 싫어하셨다. 그는 절대로 법을 어기지 않는 원칙 위에 자신의 인생을 건축하셨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의 말씀은 서명한 계약만큼이나 신성한 것이었다. 우리 형제들 간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에는 다소간 차이는 있지만 우리 주님께 대한 그의 신실한 믿음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를 한다. 아버지는 그 같은 자신의 신앙을 우리 자녀들 모두에게 물려주시는 일에 헌신된 분이셨고 그들 각자가 바른 신앙 안에서 모두 잘 성장해 가도록 항상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신 분이셨다. 내가 무디학교의 중책을 담당하기 위해 집을 떠나던 날 기차역에서 아버지는 나의 어깨를 따뜻하게 안아주시며 말씀하셨다.

"조지야, 난 네게 단 한 푼도 도와 줄 여유가 없지만 다만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아버지는 우리 자녀들 모두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우리는 다 건강하게 아무 문제없이 잘 자랐고 어른이 되어서도 모두 하나님의 뜻에 민감한 자들이 되었다. 그는 항상 우리들에게 진실하라고 가르치셨고 거짓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우쳐 주셨다. 그는 우리 형제들 모두가 최고가 되기를 원하셨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인물들이 되기를 바라셨다. 그는 늘 자신을 순종하라 가르셨고 또한 하나님을 늘 순종하라 가르치셨다. 그는 우리가 옳은 일을 진실히 행한다면 비록 혼자가 되더라도 결코 두려워 말라 가르치셨다. 나의 아버지가 남기신 이 같은 위대한 유산 곧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최고의 사명이라 가르치신 그 같은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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