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성경 해설가 버넌 맥기 박사(Dr. J. Vernon McGee)는 시편 116편을 "사망을 삼키시고 승리하신 하나님께 바치는 찬양의 노래이다."라고 제목을 달았습니다. 시편 116편은 또한 할렐 시편 중에 하나입니다. 시편 113편에서 118편을 할렐 시편이라 부릅니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절기 때마다 그들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리는 시편을 말합니다. 할렐(Hallel)의 히브리 의미는 찬양(praise)이란 뜻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제자들과 유월절 최후만찬에서 부르신 찬송도 바로 이들 할렐 송입니다( 26:30, 14:26).

  특별히 시편 116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과 깊은 연관이 있는 시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시편 116편 전체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고난 중에 아버지 앞에 부르짖는 기도와 간구(1~5), 그리스도의 기도에 대한 그 응답과 하나님의 도우심(6~13),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과 부활의 영광(14~19) 등으로 분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시편 116편의 영역은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I love the Lord)라는 첫 구절로 찬양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입술로만 '주를 사랑한다'라고 찬양하기 쉽지만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말씀)을 지키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14:15, 21)

  진정으로 주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우리는 주님의 제자(follower)가 되어 그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하며 또한 반드시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도 불멸의 시편 제23편에서 고백합니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

  이것이 주를 진정으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자의 고백입니다. 내 주님, 내 목자로 말미암아 만족하는 삶이야말로 최상의 주를 사랑하는 삶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 목자께서 친히 자신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내 앞에 모든 원수와 장애물들을 물리쳐 주심을 믿게 될 때 어찌 우리가 그 목자를 사랑하며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특히 다음 구절을 사랑하며 감사하게 여깁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5)

  이처럼 나의 사랑의 목자께서는 나의 원수의 목전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자며 내 기뻐하는 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면 어찌 우리가 감사의 잔을 들고 그 주를 찬양하며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다음과 같은 구절을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23:4)

  이 구절의 말씀은 오늘의 시편 116편의 다음 구절과 함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소중한 구절입니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 도다."( 116:15)

우리 하나님께서 그의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보신다고 하는 약속은 얼마나 감격스런 말씀입니까!

  어느 듯 우리 한인 이민세대들도 마치 가을 낙엽이 찬바람에 떨어지듯이 하나 둘씩 저희들의 곁을 떠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저 역시 시카고에서부터 서로 만나 이곳 캘리포니아지역까지 와서도 교제를 함께 나누던 주 안에 귀한 한 자매님께서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지 불과 몇 달 만에 부고소식이 전해왔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우리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귀히 여기신다라는 약속의 말씀에 깊이 감사드리게 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분들은 이 같은 불행한 일을 당하면 어찌하든지 더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혹은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지만 이 자매님께서는 끝까지 자신의 모든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으로 잠잠히 받아드리셨습니다. 원망이나 불평대신 자신의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평온한 마음과 모습으로 마침내 주님의 손에 자신의 영혼을 의탁 드렸습니다. 평생 주를 사랑하던 그 자매님은 이처럼 자신이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자신의 주님만을 의지했고 마침내 그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성도(Saint)란 위대한 삶이나 업적을 남긴 자들에 붙이는 영예의 타이틀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지역에 그가 전한 주의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새로운 주인과 구주로 받아드리고 믿어 구원함을 받은 자들을 성도라 부르고 있습니다. 지난날 죄악 된 길에서 돌아서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얻게 된 자들을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하시고 거룩한 성도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서의 문안을 이처럼 씁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2-4)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은 분들이라면 여러분들도 이제 거룩한 성도가 되십니다. 그리고 이 같은 성도들은 그의 평생뿐만 아니라 마지막 죽는 날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귀하여 여기시는 것입니다. 어찌 우리가 이 같은 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I love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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