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 거짓말로 곤경에 처한 아브라함

성경 해설가 버논 맥기(J. Vernon McGee) 박사는 자신의 창세기해설에서, 창세기 20장은 "마치 송아지의 5번째 다리와 같다."(as a fifth leg on a cow)라고 익살스러운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분명 창세기 20장의 기록은 위대한 우리 믿음의 영웅 아브라함의 생애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연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아브라함은 분명 우리에게 훌륭한 믿음의 본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의 신뢰성과 위대함은 진실을 사실대로 보여주는 책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진실 된 기록의 목적은 훗날 이 같은 말씀을 읽는 모든 자들에게 거울과 경계로 삼게 하시기 위함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10:6, 11). 그러므로 창세기 20장 역시 우리들에게 주고자 하는 분명한 뜻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스코틀랜드 출신 모세오경 해설가 찰스 매킨타쉬(Charles H. Mackintosh)는 창세기 20장 해설 서두에서 이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사탄의 영역 안으로 스스로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이나 자리에 참예하게 될 때 분명 어떤 시험이나 시련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둘째로 아브라함은 그랄 왕 아비멜렉의 땅으로 그가 들어가게 되었을 때 강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고 오히려 사람인 그랄 왕 아비멜렉을 더 두려워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깊이 명심해야할 교훈입니다.

베드로 역시 이 두 가지 실수를 범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발견한 그는 주님만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 역시 바닷물 위를 그도 기적적으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출렁이는 바닷물로 향하게 될 때 곧 그는 즉시로 그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우리 믿음의 시선이 자신의 구주만을 바라보고 그만을 진실로 믿고 그를 의지하게 될 때 그 구주로부터 오는 구원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광야에서 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대로 모세의 장대 위의 놋 뱀을 쳐다본 자들은 즉시로 다시 살 수 있었던 사실도 똑 같은 믿음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4) 이는 놀라운 구원의 약속입니다.

베드로의 두 번째 실수는 그가 자신의 주 예수님보다 인간 종교지도자들을 더 두려워하게 될 때 심지어 작은 여종 앞에서까지 그는 세 번씩이나 자신의 주를 부인하는 어처구니없는 잘못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또 한 가지 실례로, 이제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열 점탐군들의 말을 믿고 하나님을 불신하던 자들은 40년간 광야를 해매이다가 모두 엎드러졌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무겁게 받아드려야 할 교훈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시대는 직접적인 계시이외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조 대대로 섬겨오던 우상을 저버리고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 하나로 새로운 믿음의 길을 나섰던 아브라함의 믿음은 실로 위대했습니다.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그가 이주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너와 너희 후손의 영원한 땅으로 주시리라는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약속은 반드시 네 아내 사라를 통하여 낳을 네 독자를 통하여 이루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같은 약속을 기다리며 약 20여 년 간 정착했던 그는 뜻하지 않은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 직후 남방 네게브지역으로 내려가 가데스와 술 사이 팔레스틴 족들의 땅 그랄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랄 왕 아비멜렉이 곧 접근해왔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그가 필경 자신을 죽이고 미모의 아내 사라를 빼앗을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녀가 자신의 아내임을 숨기고 여동생이라 말함으로 자신의 목숨을 보존할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 말을 믿은 아비멜렉은 예상대로 사라를 자신의 왕궁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친히 그를 위해 개입하신 분이 그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하여 아비멜렉에게 직접 무서운 경고를 하셨습니다.

"네가 취하고자 하는 사라를 돌려보내라 그는 나의 선지자의 아내니라. 만일 이를 불순종하여 그녀를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정녕 죽을지니라." 아비멜렉은 사리가 밝은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그의 명령을 순종하여 사라를 다시 아브라함에게로 즉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로부터 "네가 어찌하여 그 같은 거짓말로 나로 하여금 큰 죄에 빠질 번하게 하였느냐?"라는 책망을 받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거짓말로 인한 대가로 그만한 값을 치루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제 다음의 21장은 이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였더라."( 21:1-3) 이처럼 100세의 아브라함과 90세의 사라 부부에게는 웃음(이삭이란 뜻)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연약한 인간을 이처럼 다시 회복시키시고 위대한 자신의 뜻을 그들의 생애를 통해서 성취하시는 하나님은 저희 모두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영의 아버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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