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그리스도의 기적과 목적]

그리스도의 기적과 목적
20세기 위대한 일본 기독교계의 지도자 우찌무라 간조(내촌감삼)는 한 제자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들은 참으로 위대하고 훌륭하지만 그에 대한 기적이야기들은 그를 신격화시키기 위한 지나친 기록들이 아닙니까?“
그 때 우찌무라 간조는 그의 제자에게 이처럼 대답했다고 합니다.
"만일 성경에서 기적들을 모두 빼어버린다면 아마도 성경은 앞표지와 뒷표지만 남게 될 것일세."
오늘 잠시 주제로 상고하려는 요한복음 5장은 예수님의 3번째 기적에 대한 스토리입니다. 요한복음 5장은 "유대인들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고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명절(the feast)은 아마도 유월절(the Passover) 명절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3,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예루살렘(Jerusalem) 도성에는 8개의 성문이 있습니다. 당시 예수께서 들어 가시려던 문은 구 예루살렘 성 북동편에 있는 양문(the Sheep Gate)이었습니다. 유월절 희생양들을 반입하던 문이기 때문에 양문이라 부릅니다. 전설적으로 순교자 스데반이 이 성문 밖으로 이끌려 나와 유대군중들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했기 때문에 '스데반문'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예수께서 유월절에 자신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시던 '통곡의 길'이라 불리는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의 그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가셨도다."(사 53:8)
하나님의 어리신 양께서는 세상 죄 곧 저와 여러분의 죄를 지시고 이 길을 가셨습니다(요 1:29).
그런데 그 양문 곁에는 베데스다라는 한 연못이 있었습니다. 오늘 날 성 앤 교회(St, Anne Church) 가 서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베데스다(Bethesda)의 의미는 '자비의 집'(house of mercy) 혹은 '은혜의 집'(house of grace)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2천여 년 전, 사랑하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셨을 때 그가 절망적인 한 병자에게 자비와 은혜로 그를 완전하게 고쳐주셨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일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이제도 그를 필요로 하는 자들을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63년 전, 그와 같은 한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다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성내로 들어가시던 예수께서는 성문 곁 베데스다 연못가에 수많은 각종 병자와 불구자들이 몰려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특히 38년간이나 전신불구자로 병상에 누워 지내는 한 절망적인 환자에게 멈추셨습니다. 그는 친히 그 병자의 곁으로 가까이 가셔서 그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Get up, pick up your pallet and walk)
그 병자는 즉시 온전한 몸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침상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병자에게서 예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이나 심지어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알지 못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은혜와 자비'(Grace or Mercy)란 그 같은 동정이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처럼 우리가 그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를 가리시지 않고 자신의 한 없 없는 자비를 따라 그의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그의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 부릅니다. 이 같은 사랑을 무조건적 사랑(unconditional love)이라 부릅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 우리 구주께서 38년 된 병자를 완전한 인간으로 다시 고쳐주신 사랑은 바로 '무조건적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부모님들이 그의 자식들을 사랑하는데 조건이 있습니까? 부모님들의 사랑은 비 이타적 사랑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자식은 곧 부모 자신의 살과 피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이유도 바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자신의 피조물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만드신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 중의 그 면류관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시인 다윗은 이처럼 찬양합니다.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crown)을 씌우셨나이다."(시 8:4-5)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놀라운 한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기적을 통해 우리 영혼도 구원함을 받게 하시려 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기적과 그 목적을 분명히 이처럼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구주 메시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그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유일하신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오늘의 기적사건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올바로 깨달음으로 여러분들도 참된 구원을 얻으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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