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핫라인] 바운더리는 건강한 관계의 토대

김성경 KAN-WIN 옹호 상담가
게렛 신학교 목회 상담학 석사, 게렛 신학교 목회신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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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더리는 건강한 관계의 토대
한국이나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관계의 밀착이 중요시되고 상호 의존은 미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품앗이”입니다. 품앗이는 단순히 노동을 교환하는 행위라기 보다는 “서로의 필요를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관계의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이민 사회와 같은 다세대, 다문화 공동체에서는 바운더리 개념에 대한 오해와 충돌이 간혹 발생하기도 합니다. 개인의 감정이나 경계를 강조하는 “바운더리” 라는 서구식 언어가 “이기적이다” 혹은 “정이 없다” 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지요.
발달 심리학자인 마가렛 말러는 생애 초기에 아기가 엄마와 하나로 느끼다가 “나는 엄마와 다르다” 라는 자각을 통해서 자기를 형성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과정이 안정적으로 이루어 질 때, 아이는 타인과 연결 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자기감과 경계 감각을 발달하게 됩니다. 반대로 초기 양육자의 정서적 반응이 일관되지 않거나 과도하게 침범적일 경우 아이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개인은 독립된 존재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상호 연결된 전체 체계의 일부로 존재하기 때문에, 타인과의 정서적 연결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타인의 사고와 감정과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다른 사람과 나의 경계가 뚜렷한 사람은 타인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공감할 수 있고, 갈등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은 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바운더리란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면서도 연결을 유지할 수 있는 심리적, 정서적, 신체적 거리를 말합니다. 이 경계는 벽처럼 단절을 만들고 연결을 차단하는 것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관계안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역할을 합니다.
상담실에서 자주 마주하는 내담자의 어려움 중의 하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혹은 다른 사람을 ‘실망’ 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경계를 희생하는 패턴입니다. 이 분들은 다른 사람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자신의 필요를 표현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깁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보다 더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불안정하거나 무관심한 환경에서 생긴 트라우마가 있는 내담자의 경우, “나는 타인의 감정에 민감해야 안전하다” 라는 생존 전략을 내면화 하게 되고, 성인이 된 후에도 관계의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기대에 순응하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 “나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남아야 존재 가치가 있다”는 삶의 방식을 내면화해서, 타인의 감정이나 기대가 나의 정체성 일부로 흡수되는 심각한 의존관계가 발전하기도 합니다.
바운더리를 세운다는 것은 단순히 거절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상담에서는 바운더리를 배우는 과정을 ‘자기 돌봄 훈련’ 으로 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내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는 연습입니다. 내 안에 나를 지키는 울타리가 있으면 타인과의 연결이 한결 편안해 집니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세운다는 것은 단지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며 타인의 반응을 받아 들이는 연습을 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바운더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설정하며 유지하는 연습을 통해 좀더 ‘온전한 나’를 표현하게 되며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이러한 개념이 정착될 때, 서로의 필요를 채우며 돌보는 품앗이 문화도 한껏 성숙해지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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