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공경할 만하고 슬퍼할 만한

[한희철 목사]

지난번 강원도 영월을 다녀올 때의 일입니다. 아는 이가 소개해 준 식당을 찾아갔는데, 식당 앞에 차를 세운 뒤 내리면서 보니 뜻밖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식당 맞은편에 아파트가 한 채 서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번듯한 아파트가 아니었습니다. 양철이지 싶은 지붕이며 허름해 보이는 창문, 제각기 다른 모양의 물통, 오래된 아파트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아파트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구의 손길이었을까요, 아파트 벽면 전체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계단을 따라 아이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모습, 한 아이가 고양이와 함께 난간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 가만히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연인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 아버지가 아이의 두 손을 잡고 비행기를 태우듯 빙빙 돌리는 모습, 정겹고 다양한 그림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감탄을 하며 그림을 보고 있자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누구의 손이 가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지는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필시 허름했을 아파트, 그러나 누군가의 손이 가자 아파트는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멋진 작품이 되었으니까요.  

가까이 지내는 분이 책 몇 권을 보내주었습니다. 책 중에는 《점검》이라는, 사자성어를 담은 두툼한 책이 있었습니다. 틈나는 대로 차 한 잔 마시듯 책을 읽어야지 하며 첫 번째 사자성어를 찾아보았습니다. ‘가경가비(可敬可悲)’라는 말이었는데, 귀한 일화가 담겨 있었습니다.

실무 역량이 탁월했던 이세재(1648-1706)는 가는 곳마다 중요한 일들을 이루어냅니다. 동래부사로 부임하면서는 불법으로 풍속을 해치던 왜인들의 버릇을 단단히 고칩니다. 경상도 관찰사가 되어서는 가산산성을 새로 쌓아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했습니다. 평안감사로 부임한 그는 옛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지키던 자모산성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무너진 성을 수축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성을 보수할 만한 벽돌이 없었습니다. 산성 위 오래된 구덩이 수십 개가 있는 것을 본 이세재가 구덩이를 파보니 벽돌 굽는 가마가 나왔고, 구덩이마다 벽돌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벽돌에는 박서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박서는 1231년 귀주 전투에서 몽골군을 물리쳤던 고구려의 명장, 그가 자모산성에 성을 쌓으려고 만들었다가 완성하지 못한 벽돌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자모산성을 쌓으려고 박서가 만든 벽돌을 수백 년이 지나 이세재가 성을 쌓는데 요긴하게 썼으니, 놀랍고도 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 일을 이덕리가 자신의 국방계획을 담은 《상두지》에 기록했는데, 그가 보탠 한 마디가 있습니다. “옛사람의 정신과 기력은 수백 년 뒤에도 그 뜻과 사업을 능히 펼 수 있게 하니, 공경할 만하고 또한 슬퍼할 만하다.” ‘가경가비(可敬可悲)’라는 말은 바로 거기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당장은 쓰임을 받지 못한다 해도 누군가의 올바른 선견지명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가도 빛을 발하는 법, 오늘 우리들의 삶이 그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우리 마음이 가는 곳마다 세상이 달라지는, 부끄럽지 않은 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우리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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