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황제 ‘루스벨트 친서’ 원본, 121년 만에 미국 의회도서관서 발굴
을사늑약 저지 위한 고종의 주권 수호 의지 확인
특사 헐버트의 헌신적 행적도 고스란히 드러나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미국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고종 황제가 당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냈던 친서 원본이 121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은 지난 4월 21일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해당 친서와 함께 특사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가 직접 작성한 영문 번역본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905년 10월, 일제의 보호조약 압박이 거세지자 고종 황제는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 박사를 비밀 특사로 임명했다. 1882년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의 ‘거중조정(제3국이 부당하게 간섭할 경우 서로 돕는다)’ 조항에 근거해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

헐버트는 일제의 탈취를 우려해 친서를 미국 공사관 외교행랑 편으로 먼저 보낸 뒤, 자신은 신임장도 없이 도미 길에 올랐다. 그는 일본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11월 중순 워싱턴에 도착했으나, 이미 일본의 사전 공작을 받은 백악관과 국무부는 면담을 거절했다. 헐버트는 며칠간 복도에서 대기하는 수모를 겪은 끝에,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인 11월 25일에야 국무장관을 만나 친서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이 친서는 헐버트의 회고록에 영문으로만 전해졌을 뿐, 원본의 행방은 묘연했다. 1998년부터 원본을 찾아온 김동진 회장은 2026년 3월, 기념사업회 인턴(다트머스대 앨리스 김)의 제보를 통해 미국 의회도서관 ‘루스벨트 문서’ 내에 친서가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직접 현장을 방문한 김 회장은 대한제국 황실의 위엄이 느껴지는 오얏나무 무늬의 두꺼운 용지에 찍힌 황제의 어새를 확인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헐버트가 호텔 방에서 급히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줄쳐진 노트지 6장 분량의 손글씨 영문 번역본이었다. 이는 당시 긴박했던 상황과 헐버트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친서에서 고종은 일본의 행위를 ‘동맹국과의 신의를 저버린 배신’이자 ‘한일의정서 위반’으로 규정하며, 미국의 외교 원칙에 따른 최대한의 도움을 호소했다. 비록 미국의 친일 정책으로 인해 즉각적인 결실을 보지는 못했으나, 이 문서는 고종이 주권 수호를 위해 끝까지 외교적 노력을 다했음을 증명하는 물적 증거다.
김동진 회장은 “헐버트는 어느 대한제국의 신하보다도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했으며, 이후에도 미국의 친일 정책을 맹비난하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고 강조했다. 이번 발굴을 계기로 헐버트 박사의 숭고한 한국 사랑과 고종의 외교적 항거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올바르게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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