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규만 박사] 건강한 이민 가정 만들기 시리즈 19: 조부모와 손자녀: 더 커진 세대 차이를 건강하게 극복하는 방법

건강한 이민 가정 만들기 시리즈 19: 조부모와 손자녀: 더 커진 세대 차이를 건강하게 극복하는 방법
채규만 박사 (임상심리학자 · 가족 및 부부 상담자)
시카고 근교의 한 한인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은퇴 후 손자를 돌보러 한국에서 오신 박옥순 할머니(가명, 71세)는 여덟 살 손자 케빈(가명)이 저녁 식사 시간에 계속 태블릿을 보는 것을 보고 참다못해 태블릿을 빼앗았습니다. 케빈은 큰 소리로 울며 "할머니 미워요, 왜 내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요!"라고 소리쳤습니다. 놀란 할머니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건데, 어떻게 할머니한테 그런 말을 하니." 그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온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 어느 쪽 편도 들지 못한 채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이 짧은 장면 안에는 이민 가정에서 조부모와 손자녀 사이에 벌어지는 세대 갈등의 거의 모든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자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언어와 훈육 방식과 애정 표현법을 가지고 한 지붕 아래 살아가야 하는 현실입니다.
- 한국에서 온 조부모와 미국에서 자란 손자녀의 특징
많은 한인 이민 가정에서 조부모는 자녀 양육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합니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이민 사회의 구조상, 조부모가 초청되거나 방문하여 손자녀를 돌보는 일은 매우 흔합니다. 그런데 조부모가 한국에서 형성한 양육관과 손자녀가 미국에서 학교와 또래 문화를 통해 흡수한 가치관 사이에는 부모 세대의 문화 격차보다 오히려 더 큰 간극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최소한 미국 사회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어느 정도 문화에 노출되어 있지만, 조부모는 언어의 장벽과 제한된 사회적 접촉 때문에 한국에서 가지고 온 사고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손자녀를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손자녀는 학교, 미디어, 친구 관계를 통해 미국식 개인주의, 자기표현, 평등한 대화 방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발달심리학자 존 보울비(John Bowlby)의 애착 이론에 따르면, 조부모와 손자녀 사이에도 부모-자녀 관계 못지않게 깊은 애착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애착의 깊이가 아니라, 그 애착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방식이 세대와 문화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 양육 방식의 차이로 인한 갈등
박옥순 할머니와 케빈의 사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할머니에게 태블릿을 빼앗는 행동은 사랑과 책임감의 표현이었습니다. 한국의 전통적 양육관에서 어른은 아이의 행동을 즉각적으로 통제할 권한과 의무가 있으며, 그 과정에서 아이의 동의를 구하거나 이유를 설명하는 절차는 종종 생략됩니다. 그러나 케빈이 다니는 미국 학교에서는 아이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 않는 것, 규칙을 정할 때 아이와 미리 대화하는 것,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존중받아야 할 권리로 가르칩니다. 이 두 세계관이 충돌할 때, 조부모는 "버릇없다"고 느끼고 손자녀는 "무섭고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실제 상담 현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갈등의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식습관을 둘러싼 갈등("밥을 남기면 안 된다" vs 아이의 배고픔 신호 존중), 신체적 훈육에 대한 시각 차이(가벼운 매나 손찌검이 한국에서는 훈육으로 여겨지지만 미국에서는 아동학대 신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존댓말과 호칭 사용을 둘러싼 긴장(영어로만 대답하는 손자녀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조부모), 감정 표현 방식의 차이(울거나 화내는 것을 "버릇없음"으로 보는 조부모와 감정 표현을 건강한 것으로 배운 손자녀) 등입니다. 가족치료학자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의 가족체계이론은 이러한 갈등이 단지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관통하는 정서적 체계의 일부임을 보여줍니다. 조부모의 훈육 방식은 그들이 자녀를 키우던 시절, 나아가 그들 자신이 양육받았던 방식에서 형성된 것이며, 손자녀 세대의 반응 역시 미국 사회라는 새로운 정서적 체계 속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이 틀렸다기보다, 서로 다른 체계가 부딪히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첫걸음입니다.
- 조부모의 역할 재정의하기
이민 가정에서 조부모가 겪는 심리적 어려움 중 하나는 역할의 상실감입니다. 한국에서는 손자녀 양육에 대한 발언권과 권위가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인정되었지만, 미국에서는 언어 장벽 때문에 학교 상담이나 소아과 진료조차 자녀 부부에게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부모는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나"라는 무력감을 느끼기 쉽고, 이 무력감이 오히려 집안에서만큼은 강한 권위를 행사하려는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상담에서 제안하는 역할 재정의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조부모의 역할을 "규율을 집행하는 권위자"에서 "안정적인 정서적 기반을 제공하는 존재"로 옮기는 것입니다. 훈육과 규칙 설정의 최종 책임은 부모에게 맡기고, 조부모는 손자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안전감, 그리고 뿌리에 대한 감각을 전해주는 역할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손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가장 그리워하는 조부모의 기억은 대개 엄격한 훈육이 아니라, 함께 요리하던 시간,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던 순간, 조건 없이 안아주던 품이었다는 것을 많은 상담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조부모의 권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부모가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역할—즉 훈육자가 아니라 뿌리와 정체성의 전달자—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시편 78편은 "우리가 우리 자녀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시편 78:4)라고 말씀합니다. 조부모의 가장 귀한 사명은 손자녀의 매일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뿌리, 가족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입니다.
- 세대 간 문화적 다리 놓기
갈등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부모 세대가 조부모와 손자녀 사이의 "통역자"이자 "다리" 역할을 의식적으로 맡는 것입니다. 박옥순 할머니의 며느리는 이후 상담을 통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실천했습니다. 첫째, 할머니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내어 미국 학교에서 아이의 물건을 존중해 주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이것이 사랑을 덜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사랑임을 차분히 설명했습니다. 둘째, 케빈에게는 할머니가 한국에서 얼마나 어려운 시절을 지나오셨는지, 할머니의 행동 뒤에 있는 사랑의 마음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셋째, 가족이 함께 모여 태블릿 사용 시간에 대한 간단한 규칙을 정하고, 할머니에게도 그 규칙을 정하는 대화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러한 다리 놓기는 한 번의 대화로 끝나지 않습니다. 정기적인 가족 대화 시간을 마련하여 조부모에게는 미국 학교와 사회의 문화를 조금씩 설명해 드리고, 손자녀에게는 한국 문화와 조부모 세대가 겪은 역사적 배경(전쟁, 가난, 급격한 사회 변화)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손자녀가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배우도록 돕는 것, 조부모가 간단한 영어 표현이나 미국 학교 시스템을 익히도록 돕는 것도 실질적인 다리가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어느 한쪽 편에 서서 다른 쪽을 "틀렸다"고 규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 세계 모두에게 정당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아이도 조부모도 방어적인 태도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 조부모도 배우고 적응하기
변화는 자녀와 손자녀에게만 요구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부모 역시 새로운 문화 안에서 계속 배우고 적응해야 할 존재입니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평생 지녀온 가치관과 방식을 노년에 다시 조정한다는 것은 큰 심리적 도전입니다. 그러나 많은 조부모들이 실제로 이러한 적응을 해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손자녀와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박옥순 할머니는 몇 달 후 상담을 통해 이렇게 변화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태블릿을 빼앗는 대신 "이제 그만 볼 시간이야, 할머니랑 같이 책 보자"라고 말을 건네기 시작했고, 케빈이 영어로 학교 이야기를 할 때 다 이해하지 못해도 끝까지 눈을 맞추고 들어주었습니다. 놀랍게도 케빈은 점점 할머니에게 한국어 단어를 물어보기 시작했고,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음식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상담 말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여기 와서 손주를 가르치러 온 줄 알았는데, 사실은 손주한테 배우고 있었네요."
이것이 바로 성경적 세대 관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나이나 지위가 아니라 겸손과 사랑이 우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8:3)고 말씀하셨습니다. 조부모가 손자녀에게서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를 가질 때, 오히려 손자녀는 조부모를 더 깊이 신뢰하고 존경하게 됩니다. 세대 간 문화 차이는 없앨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겸손과 사랑으로 끊임없이 다리를 놓아가야 할 평생의 과정입니다.
나가며
조부모와 손자녀 사이의 세대 차이는 이민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가정이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만 이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그 간극을 더욱 크고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간극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간극 위에 사랑과 이해의 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조부모가 훈육자에서 뿌리의 전달자로 역할을 재정의하고, 부모가 두 세대 사이의 통역자가 되어 주며, 손자녀가 조부모의 역사와 사랑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질 때, 세 세대는 서로에게 가장 귀한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채규만 박사는 임상심리학자이자 목회 상담자로, 시카고 지역 한인 이민 가정을 위한 상담과 교육, 칼럼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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