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규만 교수] 건강한 이민 가정 만들기 8: 부모의 희생 vs 자녀의 죄책감: "너 때문에 이민 왔다"는 말의 무게

채규만 교수

한국 및 미국 임상심리 전문가 | 성신여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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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이민 가정 만들기 8:

부모의 희생 vs 자녀의 죄책감:

"너 때문에 이민 왔다"는 말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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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한인에서 한인 청소년 상담을 하다 보면 놀랍도록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게 됩니다. 고등학생 민준이(가명)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저 때문에 한국에서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친구도 다 두고, 여기 오셨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공부를 못하면… 부모님 인생을 제가 망친 거잖아요." 민준이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느끼는 것은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무거운 죄책감이었습니다. 이민이라는 결단은 분명히 대단한 희생을 수반합니다. 낯선 언어, 낯선 문화, 낯선 땅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부모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 희생은 진실하고, 숭고하며, 마땅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희생이 자녀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는가에 있습니다.

"너 때문에 이민 왔다"는 말은 자녀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은 부모의 진심에서 나온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의 마음에 이 말이 의미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아이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계산을 시작합니다. '내가 부모님의 희생만큼 잘 되어야 한다.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나는 부모님께 빚을 지는 것이다. 나는 내가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는가?' 이 계산은 아이를 지치게 만들고, 결국 삶 전체를 죄책감이라는 그늘 아래 놓이게 합니다.

죄책감은 동기가 되지 않습니다

임상 현장에서 오랫동안 관찰해 온 사실이 있습니다. 죄책감으로 자녀의 학습 동기를 강화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력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죄책감은 불안과 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책상에 앉아 있는 아이, 부모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실망시키는 것이 두려워서 순종하는 아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오직 부모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달려가는 아이. 이런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종종 번아웃, 우울증, 관계의 어려움이라는 형태로 그 대가를 만납니다.

성경은 이 진리를 이렇게 선포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 여기서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단순히 화를 내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녀의 마음을 낙심케 하고, 억압적인 의무감으로 짓누르지 말라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희생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아무리 선한 의도일지라도, 자녀의 영혼을 노엽게 하고 낙심시킬 수 있습니다.

자녀를 부모의 성공 증명 도구로 만들지 않기

한인 이민 가정에서 자주 보이는 또 하나의 역학이 있습니다. 부모가 이민 생활에서 겪은 좌절과 상처를 자녀의 성공을 통해 회복하려는 심리입니다. 한국에서 이루지 못한 꿈, 이민 사회에서 받은 차별과 무시, 언어의 장벽 때문에 낮아진 사회적 위치. 이 모든 것이 자녀의 명문대 입학, 전문직 취득, 사회적 성공을 통해 보상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자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의 미완성 이야기를 완성해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것은 자녀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운 짐입니다. 아이는 그 짐을 지고 달리다가 어느 순간 무너집니다. 번아웃, 자해, 섭식장애, 무기력증… 이 모든 것이 때로는 그 짐을 더 이상 질 수 없다는 신호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유혹을 용기 있게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꿈을 대신 이루어 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독립적인 인격체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희생했다"는 말 뒤에 숨겨진 기대가 있다면, 그 기대는 자녀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자녀를 통한 자기 치유의 시도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자녀를 통한 대리 성취(vicarious achievement)'라고 부릅니다.

죄책감이 아닌 감사로 자녀를 양육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의 희생을 숨겨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희생을 자녀에게 전달하되, 전달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죄책감을 심는 방식은 이렇게 말합니다. " 때문에 이민 왔는데, 이게 뭐냐." 감사를 키우는 방식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가족이 여기서 좋은 삶을 있을 같아서 왔어. 쉽지는 않지만, 너와 함께 길을 걷는 것이 감사해."

전자는 자녀를 희생의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후자는 자녀를 함께 걷는 동반자로 초대합니다. 전자는 의무와 빚의 언어입니다. 후자는 은혜와 감사의 언어입니다. 부모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눌 때, 즉 힘들었던 순간, 두려웠던 순간, 그럼에도 희망을 품었던 순간을 이야기할 때, 자녀는 부모를 인간으로 만납니다. 그리고 그 인간적인 만남 속에서 자연스럽게 감사가 자랍니다. 강요된 감사가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싹트는 진짜 감사입니다.

건강한 가족 역할 재정립

건강한 이민 가정을 만들기 위해 역할을 다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는 공급자이자 보호자이지, 자녀에게 빚을 지우는 채권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녀는 부모의 투자에 반드시 수익을 돌려줘야 하는 채무자가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존재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를 묵상해 보면 중요한 통찰을 얻게 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는 누가 누구에게 더 많이 희생했는가를 따지는 계산이 없습니다. 그 관계는 서로 내어주는 사랑, 서로를 존중하는 사랑, 조건 없는 헌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건강한 가족 역시 이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희생의 장부를 기록하지 않고, 서로를 짐 지우지 않으며,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존재로 서도록 돕는 관계입니다.

오늘 이 칼럼을 읽으시는 부모님께 부탁드립니다. "너 때문에"라는 말 대신 "우리 함께"라는 말을 써 보십시오. 자녀의 가슴에 죄책감 대신 감사가, 두려움 대신 사랑이 자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이민의 고단함을 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채규만 박사는 시카고 지역에서 40 년간 목회와 임상심리 사역을 목사·임상심리학자입니다. 칼럼은 시카고 한인 이민 가정의 건강한 가족 문화를 세워가기 위한 연재 시리즈입니다.

kmch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