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s Travel] 켄터키 프라이드 할아버지의 신화

ANDREW’S TRAVEL NOTES
미대륙 명소만을 찾아가는 여행일지 (97부)
켄터키후라이드 할아버지 신화 

이렇게 쉬지 않고 레스토랑 문 두두리며 자신 소개와 자신이 개발한 레시피를 듣던 말던 열심히 설명하던 센더스는 어느날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냉담하던 식당주인들. 그런데 하루는 자신의 레시피를 유난히 귀담아 듣는 이가 있었다. 유타주 주도 솔트레익에서 Harman Café 운영하던 젊은이 피트 하먼이었다. 그는 끝까지 듣더니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센더스 보다 30년이나 나이 젊은 식당주인이었다. 훗날 원조 KFC 창시자이면서, 그의 가게를 1호점으로 시작해서 본격적 글로벌 프렌차이즈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피트 하먼은 젊음을 무기로 신선한 마켓팅 전략에 주력했다. 우선 그는 낮이고 밤이고 시간만 되면 가게 안에서 샌더스의 지난 날 이야기를 경청했다.  God Listener is a Good Manager ! (좋은 리더가 될려면 무조건 잘 들어야 한다) 대학시절 교수님이 사회에 나가 성공하려면 남의 말 끝까지 경청하라고 강조에 강조를 한 지침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트는 속내로 영감 샌더스의 옛시절 자랑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래 사업 포인트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샌더스 이야기 중에서 마흔살 때 자신의 허름한 집에 찾아와 후라이드치킨 먹고 감탄한 나머지 켄터키주 빛낸 멋진 요리 창시자라고 명예 대령계급장 Colonel (커널) 하사한 주지사 루비 라콘 이야기에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그래서 피트는 상호명을 자신의 이름 딴 Harman Café 에서 켄터키후라이드 치킨으로 과감히 개명함으로 오늘날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레스토랑 원조가 된 것이다.

그 이유는 미중부의 켄터키주 이미지 자체가 우리나라 전라도 밥상처럼 미국에선 푸짐한 음식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샌더스가 처음으로 그곳에서 닭튀김 개발해 냈기에 정통성도 함께 간직하고 싶었다. 동시에 젊은 피트는 용기도 개발했다. 오늘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사용하는 종이로 만든 둥그런 미니 양동이 스타일 버킷통이었다. 버킷이란 용어 자체가 주는 푸짐한 이미지로 고객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이래저래 젊은 피트는 곧바로 크게 성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샌더스와 다시 재계약을 추진한다. 첫째는 레시피는 영원히 다른 곳에 안 판다. 둘째는 샌더스가 흰색 양복 입고 전국 홍보대사 겸 주방의 암행어사로 출장 다닌다. 세째로 전국 프렌차이즈샵 맛과 청결을 똑같이 통일하는데 주력한다

그리고 피트는 사례로 샌더스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지불했다. 샌더스는 1890년에 태어나 갖은 고생 끝에 무일푼 상태였던 1952년 여름 즉 그의 나이 62세에 피트 만나 켄터키후라이드 치킨 레시피 하나 달랑 만들어 인생 초대박 터트린 셈이다. 향년 90세로 운명할 때까지 샌더스는 트레이드마크 흰 양복과 백색구두 차림에 007가방 들고 전국 돌아다니며 남은 여생 멋지게 살았다.

지금도 솔트레익시 1호점은 그 옛날 그대로 운영 중이며 그 가게 안에는 샌더슨의 비밀병기였던 압력밭솥이 전시되어 있다. 평상시 그의 심볼이었던 흰색 양복 등도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어 보는 이의 심금을 울려준다. KFC는 피트 하먼 이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으며 현재는 피자헛이나 타코벨 등 운영하는 대형 프렌차이즈 회사가 주인이 되어 명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심혈 기울려 개발한 치킨 할아버지 샌더스 그리고 마켓팅의 천재였던 젊은 주인 피트 하먼. 이들 두 사람이 만든 후라이드치킨 공화국 성공신화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노긋노긋 치킨 구워내는 냄새가 오늘도 지구촌 남녀노소 입맛을 다지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 98부 계속)

Andrew Kim은 여행작가와 사진작가로 현재 미국에서 활동 중이며 라스베이거스 한국문화센터 여행동호회에서 여행설계가로 일한다 (투어문의 1.714.625.5957 / 카카오아이디 : USATOU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