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s Travel] 인류가 최초로 새처럼 하늘 날아오른 곳 키티호크 (Kittyhawk)

ANDREW’S TRAVEL NOTES
미대륙 명소만을 찾아가는 여행일지 (105부)
인류가 최초로 새처럼 하늘 날아오른 곳 키티호크 (Kittyhawk)


1903년 12월17일 형과 5명의 참관인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조종대를 잡은 동생 오빌이 힘차게 앞으로 굴러가기 시작하던 순간에 상승키를 올리자 마자 플라이 1호는 드디어 하늘로 붕 뜨면서 날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상 인간의 손으로 만든 엔진이란 동력기관을 통해 하늘로 오른 최초의 조종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휘발유를 이용한 오늘날의 동력기관이었으니 위대한 개발이 따로 없다. 닐 암스트롱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하면서 ‘내게는 작은 발자국이지만 인간에겐 위대한 도약이다.’ 라는 유명한 첫 메시지를 지구인들에게 주었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어쩜 라이트 형제의 피눈물 나는 7년 간의 수많은 연구와 노력의 댓가로 인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날 오후 오하이오주 테이톤시에 살던 라이트 형제의 부모는 한 통의 전보를 받는다. 기뻐해 주십시요. 오늘 공식적으로 첫 비행 성공. 평균속도 37마일 (시속 약 60 Km) 최장 59초 비행 성공. 신문기자들에게 연락 바람. 크리스마스때 집에 갑니다. 부모에게 보낸 짧은 전보내용이지만 인류역사상 최고의 전보 내용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 라이트 형제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동내 사람들과 함께 한 감격과 흥분의 파티였다. 지난 7년간 이곳 노스케롤라이너주 키티호크에서 독수리 활공을 연구하면서 기본 전략을 만들고 비행기 제작공장에 숙소에 연구실 등등 다목적실 같은 작은 두 동의 건물을 만들었다.

이들은 바로 이 작업실에서 날개를 설계하고 그 날개에 입힐 천을 사서 재단을 하고 재봉틀로 재봉을 해서 천들을 길게 연결시켜 날개에 입혔다. 누구도 만들지 않은 비행기여서 누구에게 정보를 얻을 수도 그리고 알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가시밭길 고행의 연구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서 비행기 타고 하늘로 비행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아마 100년 전 이들 형제의 피눈물 나는 고생과 이들의 범상한 연구를 기억해 줄 사람은 아마 흔하지 않을 것이다. 첫 비행에서 겨우 12초 동안 36미터 비행했는데 지금의 747 점보기 날개가 무려 60미터 정도이니 고작 날개 반 정도 밖에 못 비행한 것이다.

그러나 첫 비행에 성공한 이들 형제의 비행기 제작기술은 일취월장하여 두번째 비행에선 59초 동안 무려 243.84미터를 비행했으니 무려 약 8배가 더 길어졌다. 첫 비행은 동생 오빌이었지만 두번째 비행은 형 위버였다. 이렇게 계속 비행 기록을 경신한 형제의 관건은 비행기 무게를 최대한 줄여 더 많이 비행 할 수 있는 소재 개발이었고 하나는 좀 더 강한 엔진을 만들어 속도를 최대한 올려 강한 추진력을 얻는 것이었다. 이렇게 개발에 개발을 거듭한 결과 드디어 2년 후에는 무려 40km 장거리 비행을 38분 만에 주파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래서 미육군에서 처음으로 비행기 주문 받는 경사도 이룬다.

그러나 형 위버는 45세에 장티프스로 운명하고, 동생 오빌도 미국과 유럽의 대기업들이 특허를 모방해 최신의 비행기들을 속속 개발해 내자 그만 극도의 배반감으로 인한 홧병과 우울증에 회사 문 닫고 은둔에 들어간다.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첫 비행에 성공한 형제들이라는 것 이왼 없다. 형제의 피눈물 나는 노력의 대가에 비해 결과는 나무나 비참했다. 결혼도 포기한 채 오직 비행기 제작에만 몰두한 끝에 성공한 기술이 어느날 동내 도둑고양이 밥이 된 격이어서 안타깝다. 그나마 미공군에 아직도 라이트연구소가 있어 이들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달래 주어 다행이다.

Andrew Kim은 여행작가와 사진작가로 현재 미국 전역에서 활동 중이며, 주로 라스베이거스 한국문화센터 여행동호회에서 여행설계가로 일한다 (투어문의 1.714.625.5957 / 카카오아이디 : USATOU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