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s Travel] 아리조나주 하바수호수로 이민 온 런던 브릿지 (88부)

Andrew’s Travel Notes
재미난 미국 국립공원 이야기
아리조나주 하바수호수로 이민 온 런던 브릿지 (88부)

런던 다리 경매가 시작된 경매시장 안은 쥐 죽은 듯 고요만이 흘렀다. 무너져가는 다리를 경매시장에 내 놓은 기상천외한 런던시 의회 초유의 경매물건에 대해 모두가 유찰될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  런던시 의회도 깜짝 놀랐고 경매인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스타트 가격 120만불에 낙찰이 된다 해도, 유속이 꽤나 빠른 템즈강을 막고 어떻게 수많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저 육중한 런던브릿지를 해체할 것이며, 해체한 이후엔 또 어디로 가져갈 것이며, 그 다음 다리를 어떻게 복원 시킬 것인가 ?  다리 구입보다도 다리 해체와 이동 그리고 복원 등 후속작업이 어마어마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런던 경매시장에 내 놓은 런던브릿지가 경매인의 120만불 스타트 경매가 알림과 동시에 맨 뒤에서 누군가 순식간에 외친 300만물이란 말에 순간 경매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이었다. 무너져가는 다리를 경매시장에 내 놓은 런던시 의회 발상에 모두가 놀랐고 또 그것을 사겠다고 덤벼들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란 예상을 뒤엎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게 한번에 칼을 꺼낸 그 사람 이름은 미국인 Robert McCulloch (로보트 맥컬럭)이었다. 그는 위시콘신주 밀워키에서 1943년에 McCulloch Motors Corporation 창업하여 벌목용 톱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켈리포니아로 사업체를 이주했고 우연한 기회에 1930년 대에 건설된 파커댐 때문에 생긴 인공호수 Lake Havasu (하바수) 만나면서 호수에 매료 되었다. 1964년 호수의 중앙을 기점으로 동쪽은 아리조나주 서쪽은 켈리포니아주인데 그는 아리조나주에 공장겸 종업원 숙소를 지어 이사한다. 종업원만 4백명이 넘는 제법 큰 중소기업체를 운영중인 재력가였다. 이런 그가 어느날 아침 우연히 본 조간신문 기사 ‘런던브릿지 경매시장 등장’이란 타이틀 보는 순간 번뜩 스쳐가는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저 다리 가져다가 이 아름다운 하바수 폭포에 옮겨오고 그리고 이 호수를 역사관광자원으로 만들면 어떨까 ?

 그의 생각은 순식간에 실행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300만불에 무너져 가는 런던브릿지 경매입찰에 성공한 1968년 4월18일 그 다음날부터 다리 해체작업을 본격적으로 한다. 우선 거대한 런던브릿지 화강암 벽돌 하나하나에 일련번호를 매기고 그리고 상단부에서부터 하나하나 해체 후 막바로 템즈강 아래 정박한 오픈 화물선에 그대로 싣고, 대서양 건너 파나마 운하 거쳐, 미서부 해안으로 올라와 롱비치 항구에 입항한다.

그리고 롱비치 항구에서 하바수 호수까지 무려 500km 사막을 달려 하바수 호수에 최종 도착했다. 런던 한복판 템즈강 고향 강에서 출발해 미국 아리조나주 하바수 호수까지 장장 8천키로 대장정의 고단한 이민길이다. 화강암 돌 벽돌만 무려 10,276개 그리고 총무게만 무려 13만 톤.  그래서 운송비만 무려 560만불 정도 들었으니 경매낙찰가 300만불의 곱절이 들어간 셈이다.  

지금부터 190년 전 런던. 당시 다리 건축의 제 1인자 존 레니는 일생에 마지막 다리공사를 수주 받는다. 그 다리가 바로 오늘날 아리조나주로 이민 온 런던브릿지다. 노쇠한 존 레니는 결국 완성을 못보고 그의 아들 Rennie Younger에 의해 완성이 되고 런던시민들은 이 다리의 애칭을 레니브릿지라고 불렀다.  (다음89부 계속)

Andrew Kim은 여행작가와 사진작가로 현재 미국에서 활동 중이며 라스베이거스 한국문화센터 여행동호회 미국문화투어에서 여행설계가로 일한다.
(투어문의 1.714.625.5957 / 카카오아이디 : USATOU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