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s Travel] 라스베가스의 자존심 시저스펠리스호텔 (140부)

1982 1114일 시저스펠리스호텔 특설링에서 당시 WBA 라이트급 세계 챔피온이었던 맨시니에게 도전장 낸 한국의 복서 김득구 선수는 그만 비운의 복서가 되고 말았다. 그가 출국 전 공항에서 기자들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던진 말은 경기장 시저스펠리스 호텔에 관 하나 준비했다.” 였다. 그렇게 그는 비장의 각오로 태평양을 넘은 것이다. 이런 그의 경기 모습을 못 보고 자라난 시대의 젊은이들도 훗날 영화 등을 통해 그 시대의 다른 유명 권투선수들은 기억 못해도 김득구 선수를 기억하는 이들은 예상 보다 많다. 안타깝게도 14라운드에서 그는 차가운 링 위로 쓸어졌다. 그리고 이내 그가 링 줄 잡고 마지막 사력 다해 일어나려는 불굴의 투지가 그대로 중계 카메라에 잡혔었다. 우리 국민은 당시 그 장면을 여과없이 보면서 모두가 경악했다. 지금까지도 그 모습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였고 며칠 후 그의 사망 뉴스를 접했을 때 온 국민은 또 한번 슬픔에 빠졌다. 비운의 복서 김득구 선수는 분통하게 그렇게 시저스펠리스 호텔에서 그의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러나 그 경기 후 충격스런 일은 계속 이어진다

당시 경기 심판 보던 오하이오주 출신 흑인 리차드 그린은 7개월 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김득구의 어머니 역시 긴급하게 비자를 받아 4일간이나 뇌사상태로 있던 라스베가스 플라맹고길과 이스턴길의 Desert Springs Hospital 방문해서 생명 연장장치 제거에 동의했다. 미국에서는 친부모 동의없이는 제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챔피온이 되어 가난을 이겨내고 인간승리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불꽃 같은 삶을 아낌없이 그대로 쏫아 부은 김득구 선수는 그렇게 우리들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것도 머나먼 라스베가스 플라멩고 길의 병상에서.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어머니가 한국으로 귀국 후, 가난이란 멍우리를 아들에게 물려준 것은 자신이었고 그 이유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는 비관 끝에 그만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또한 챔피언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 멘시니 역시 김득구 와의 경기 후 다음 경기에서부터 졸전을 면치 못하다가 그만 패하면서 조기 은퇴를 선언한다. 맨시니는 당시 미국에서 연예인 같은 수려한 외모에 쉬지 않고 치고 들어오는 저돌적 공격형 복서로 인기가 최고조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그 역시 그 날 경기 이후 비운의 복서가 되면서 결국 잊혀져간 복서가 되었다

암튼 정확히 40년 전 시저스 펠리스호텔에서 일어난 비극적 경기를 기억하고 있는 중년 이상의 한국민들은 잘 싸우고도 막판에 진 김득구 선수에 대한 한을 지금도 서로가 짊어지고 있는 줄도 모른다. 2012년 김득구 선수 사망 30주기를 맞아 미국의 베스트셀러 전기 작가 마크 크리걸이 발간한 ‘멘시니의 일생’ 에서 그는 이리 언급한다. 시저쓰 펠리스 호텔의 그날 경기는 공교롭게 두 선수 모두의 삶이었던 권투란 운동을 불행스럽게 마감하는 불운의 날이었다고.  (다음 141부 계속)

Andrew Kim은 여행 및 사진작가로서 미국 전 지역에서 활동 중이며, 라스베가스 한국문화센터에서 미서부여행 소개와 안내도 한다. 대표 저서로는 인생은 짧고 미국은 넓다등이 있다. (투어문의: 714.625.5957 / 유튜브방송운영: HiAm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