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s Travel] 왜 옐로우스톤은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 되었을까? (143부)

1872년 미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National Park (국립공원) 신생어를 만들어냈다. 바로 옐로우스톤국립공원이다. 어떻게 미서부 북쪽 와이오밍주에 위치한 엘로우스톤이 17대 대통령 그랜트에 의해 임명되었을까? 여기에는 역사가 짧은 미국민들의 서부 향한 골든러쉬에 맞물린 프런티어정신도 한 몫 했다고 본다. 일치감치 개발이 이루어진 미국 동부는 치열한 남북전쟁까지 치루면서 자연이 급격하게 훼손되기 시작했다. 그런 반면에 아직도 천연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미서부야 말로 연방차원에서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미 1864년 링컨대통령은 남북전쟁이 한창일 무렵 요세미티 입구의 마리포사 글러브 (Mariposa Grove)지역을 기병대 마리포사부대에 위임해서 자연을 보호하라고 지시했었다. 그곳에 자생하는 거대하고 몇 천년 생명을 이어오는 자이언트 세콰이어 나무의 벌목을 막아서 미서부 대자연을 자자손손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1849년 골든러쉬 때 수많은 동부의 이주자들이 몰려들었던 서부의 개척민들은 너도나도 미서부의 대경관을 자랑하는 요세미티에 열광했었다. 당시 지금의 킹스케년이나 세쾨이어케년은 시에리네바다 산맥 첩첩산중 속이라 아무도 접근 조차 하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엄격히 말하면  요세미티국립공원이 최초의 국립공원일 수도 있다, 연방 대통령에 의해 기병대까지 동원해서 국가자연보호구역으로 정했으니 말이다

오늘날의 국립공원관리청 (National Park Service) 요원들의 복장을 보면 모두 1860년 대 마리포사 기병대 복장이다. 모자도 그리고 카키색상의도 푸른색 바지도 그리고 큼지막한 가죽벨트도 모두 그대로 기병대 복장이다. 1916년 미연방에 국립공원부서가 정부행정부의 소속 기관으로 발족되면서 당시 초대관리청장인 스티븐 메더 (Steven Mether)는 처음으로 요세미티를 지켰던 마리포사 기병대 사진을 보고 그대로 공식복장으로 정했고 그 복장은 지금까지 정식 유니폼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당시 요세미티지역은 기병대가 지키고 있었고, 켈리포니아 정부도 1950년 미서부의 첫번째 주로 등극되어 정신이 없었다. 또한  18471월 샌프란시스코 강에서 사금이 발견되면서 그 다음해 1849년 수많은 49ers (포티나이너)들이 동부에서 줄을 이어 서부로 서부로 달려오던 황금러쉬 시대가 열렸으니 주정부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요세미티국립공원은 1890년이 되어서야 미국에서 두번째 국립공원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와이오밍주와 미국 동서대륙횡단 기차회사는 옐로우스톤지역을 국립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로비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리해서 전 세계에서 최초로 국립공원이 탄생이 된것이다. 지금도 국립공원이란 말을 의미있게 생각하며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국립공원은 국립공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이리 멋진 단어는 없다고 본다.  (다음 144부에서 계속)

Andrew Kim은 여행 및 사진작가로서 미국 전 지역에서 활동 중이며, 라스베가스 한국문화센터에서 미서부여행 소개와 안내도 한다. 대표 저서로는 인생은 짧고 미국은 넓다등이 있다. (투어문의: 714.625.5957 / 유튜브방송운영: HiAm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