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핫라인] 내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기: 가정폭력 생존자의 경제적 자립

 김성경  KAN-WIN  옹호 상담가 

게렛 신학교 목회 상담학 석사, 게렛 신학교 목회신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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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기: 가정폭력 생존자의 경제적 자립

가정폭력 생존자, 그들은 폭력을 경험하고 그 기억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사회는 그들에게 연민의 이미지를 투사하거나 영웅적인 서사를 가진 주체적인 사람으로 재현합니다. 그러나 실제 상담 과정에서 듣는 생존자의 목소리는 사회적으로 재현된 이미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생존자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일들이 신체적, 언어적, 재정적 폭력이었다는 것을 인지하는데 오래 걸렸습니다. 그들의 문화나 그들이 받은 교육이 그것을 폭력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고, 자신의 삶을 규정하고 객관화하는 언어를 갖지 못했기 떄문입니다. 자신들의 경험을 폭력으로 의미화하고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5년이 걸린 생존자도 있고, 30년이 걸린 생존자도 있습니다. 떠나야 하는지, 인내해야 하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선택했습니다.

폭력에서 벗어난 이후의 삶은 더욱 복잡하고 다층적입니다. 신체적으로 안전하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한 공포는 이제 없습니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폭력에서 벗어났다는 자긍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은 불안정 노동에 엮여 있는 빈곤한 삶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돌봄의 기회나 안정된 고용을 위해 준비를 할 여력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혼자 양육하며 살아야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이 있습니다. 생존자가 이민 여성인 경우, 언어 장벽이 있고 미국 내 교육 기회의 부족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은 수입이 적고 불안정하며 저녁 시간에 해야 하는 일이라 자녀 양육과 병행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은 생존자의 서사에 또 다른 복합적인 층위를 더하게 됩니다.

전 배우자가 의도적으로 생존자를 재정적으로 고립시키고 통제한 경우, 자신의 이름으로 된 은행 계좌가 있는지, 자신의 크레딧 점수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오기도 합니다. 어떤 생존자는 자신이 일을 해도 통장이나 카드는 배우자가 가지고 있고, 자신에게는 데빗 카드만 주어서 생필품만 구입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다른 생존자는 배우자가 자신의 명의로 대출을 받거나 크레딧 카드를 발급받아서 빚을 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재정적 폭력과 함께 언어 장벽이 있는 경우, 이 모든 일들은 중첩적으로 작용하여 생존자가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일은 생존자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경제적 자립은 단지 일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 존엄과 선택권을 회복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은행 계좌를 만들고, 크레딧 점수를 관리하고, 예산을 관리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생존자는 ‘내가 나의 삶을 움직이는 힘’을 되찾게 됩니다. 그러나 경제적 자립이 개인의 힘만으로 가능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언어 장벽이 있거나, 미국의 경제 시스템을 잘 알지 못하거나, 신분 문제 등으로 취업이 어려운 이민 여성들에게는 사회적 지지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때로는 생존자가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를 알아가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기도 합니다.

경제적 자립은 단순히 일자리를 구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고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회복하는 여정입니다. 생존자들의 현실에 주목해서 KAN-WIN에서는 생존자를 위한 실질적인 경제 자립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그중 하나는 ‘매칭 저축 프로그램’ 입니다. 생존자들이 자신 명의의 은행 계좌를 만들고 매달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기관이 소액을 매칭하고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또 자신의 재정 상태를 점검하고 소득과 지출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고, 크레딧 개념이나 세금 보고에 대한 것을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전국 단위의 타 기관과 연계된 프로그램에 참여해 크레딧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그룹 커리어 카운 셀링을 통해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탐색해 보기도 합니다. 이력서는 어떻게 쓰는지, 인터뷰는 어떻게 할지, 구직을 시작할 때 무엇부터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우게 됩니다. 낯선 제도 앞에서 혼자 헤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정보를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는 회복적 공간이 마련됩니다. KAN-WIN은 생존자들과 함께 그 여정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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