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 자유와 희생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저 극동지역에 마치 적은 혹처럼 매달려 있는 적은 반도가 바로 우리 조국 입니다. 그러나 태평양 건너편 수천마일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미국 젊은이들이 그곳 한반도까지 달려가 남한인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귀한 목숨을 걸고 싸워 주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지금은 많은 분들이 고령으로 말미암아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처음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다가와서 자신을 한국전참전 베테란이라고 스스로 소개하는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다시금 그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은 끝내 그들의 가족이 있는 가정이나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전사한 무명병사들만도 33,642명(용산 전쟁기념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현충일이 돌아오면 나는 이 같은 시를 다시금 깊이 음미해 봅니다. 

  어느 날 잔잔한 바람결에 나부끼는 성조기를 바라보았네. 
  한 젊은 해병이 깃발을 향해 힘찬 모습으로 경례를 하고 서 있었네. 
  아주 젊고 훤칠한 키와 자랑스러운 모습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네. 
  반듯하게 깎은 짧은 머리와 경계하는 눈초리로 군중들 틈에 그는 서 있었네.
  나는 생각에 깊이 잠겼네.
  얼마나 수많은 이와 같은 병사들이 매년마다 스러져 갔을까?
  얼마나 많이 타국 땅에서 죽어 갔고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의 눈물이 흘렀고 
  얼마나 많은 조종사들이 떨어졌고
  얼마나 많이 바다에서 죽었고 
  얼마나 많은 여우 굴들이 무명 병사들의 무덤이 되었을까?
  자유는 거저가 아니라네.
  
  어느 날 밤 나는 오래된 테입 소리에 귀를 기울였네.
  그 소리는 예전대로 변함이 없는데 나팔기수의 트럼펫 소리가 들려올 때
  갑자기 숙연한 마음이 내게 엄습했네. 
  그리고 그 트럼펫 소리가 들릴 때 진정으로 나는 아멘소리를 반복했네.
  형제나 친구의 관 위에 성조기가 덮일 때면 나는 그들의 자녀들을 생각하였네.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제들과 배우자들의 슬픔을 생각하였네.
  나는 알링턴 묘지 깊은 심연 지하 속에 말없이 누워 있는 무명의 용사들을 생각하였네.
  자유는 거저가 아니라네! (Kelly Strong)


오늘 날의 자랑스러운 조국을 생각하면 마음 뿌듯하기도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북한주민들을 생각하면 미국의 희생과 도움 없이도 오늘 날의 대한민국이 가능할 가를 생각하면 역사적으로 우리가 미국에 의해 입은 그 은혜들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 될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메모리얼 데이는 우리들에게 자유의 그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왜냐하면 자유는 많은 희생의 값을 치름으로 얻게 된 값진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영적인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함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같은 우리 영혼의 자유를 깨우쳐 주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는 이 땅에 잃어버린 죄인들을 구속하시고 죄의 노예로부터 영원히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이 땅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는 이처럼 매우 중요한 선언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요 7:31-32) 그러나 당대의 많은 유대인들이 참 영적 자유를 깨닫지 못한 것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 역시 영적인 자유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분명 자신의 영혼이 죄로 부터의 자유를 얻었는가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링컨의 노예자유해방 선언한 후에도 여전히 이를 바로 알지 못하고 종의 신분으로 살았던 흑인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선언하셨고 이를 위해 친히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우리들의 영혼을 위한 구속사역을 완성해 주셨습니다. 구원은 은혜이지만 결코 거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 같은 자유를 얻은 기쁨을 맛보게 된 자들의 축복이여!  
youngandbo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