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 영원을 사모하는 피조물

지난 2021년 4월 9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 필립 공이 서거했습니다. 그는 2개월이 모자라는 100세라는 최장수까지 누린 복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현대 인물 중에 모든 영화와 부와 명성을 모두 다 누린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죽음만은 그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 모든 인간이 지닌 숙명적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이처럼 말씀합니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시 49:12, 20) 영역성경은 존귀함(honor), 화려함(pomp), 부요함(riches) 등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어찌 되었건 죽음에 있어서는 모두가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다른 한 점이 있습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 3:2, 11) 또한 전도서는 말씀합니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 3:20-21)  
  예수께서 이제 갈릴리를 떠나 유대로 향하셨습니다. 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길이었습니다. 한 곳에 이르렀을 때 어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이처럼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9:16) 세 공관복음서 모두 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재물의 소유자였고, 젊은 관원이며, 도덕적이며 종교적으로 매우 깨끗한 삶을 추구하던 존경받을 만한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 앞에 자신의 무릎을 꿇는 겸손하고 진지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많은 장점들을 모두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한 가지만은 부족했습니다. 그는 아직 영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영생을 사모하여 얻기를 원했습니다. 마침내 이 문제를 안고 용기를 내어 예수님께로 찾아왔습니다. 


  그는 분명 바른 질문을 가지고, 바른 분에게로 찾아 나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이 젊은 랍비의 가르침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이처럼 그의 동기와 목적은 모두 옳았지만 그러나 그는 또한 심각한 실수와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향한 그릇된 그의 관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같은 인간의 차원으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그는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먼저 예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에 대한 바른 이해를 아직 바로 알지 못하고 있는 그를 예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는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어찌하여 선하다 하느냐? 선한 분은 하나님 한분이시니라."(막 10:17) 이는 곧 만일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시다면, 네가 나를 선한 선생이라 부르는 내가 바로 그 선한 분, 곧 하나님임을 네가 깨달아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우리 인간의 선과 악의 기준을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자신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심을 우리는 올바로 깨달아야만 합니다.   


  둘째로 영생을 우리 인간 스스로 자신의 선행으로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그릇된 착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4번째 십계명 이하를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마 19:18-19). 그 때 그 청년은 매우 밝은 표정으로 서슴치 않고 이처럼 대답합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마 19:20) 그러나 이것이 바로 그 청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아무리 외적으로 율법을 어김없이 쫓는다 해도 그 실천 없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약 2:20).  또한 율법의 성격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표준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 일점일획까지라도 100퍼센트 완전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 거룩성과 공의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느니라."(약 2:10)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스스로 율법에 완전하다 여기는 그의 잘못을 깨우쳐 주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 여겼습니다(빌 3:6).

그러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후 그는 그 같은 모든 것들을 배설처럼 여겼다고 고백합니다. 경건한 수도승 루터나 요한 웨슬리 그들 모두 똑 같은 영적 갈등을 격어야야만 했습니다.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과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인간의 어떤 행위의 보상이 결코 아닙니다(엡 2:8-9). 자신의 의로서는 영생의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바로 깨닫지 못한 채 그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되돌아갔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라."(요 6:40) 이 같은 놀라운 은혜의 선물인 영생을 당신은 얻으셨습니까?(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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