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 모범적인 산 믿음의 증인들

오늘 날 그리스 수도 아덴 다음으로 인구 약 30만에 이르는 초대교회 중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도시가 바로 데살로니가입니다. 온천지역으로 유명한 이곳 데마(Therma)는 BC 315년, 알렉산더에 의해 정복된 후 알렉산더의 이복누이의 이름을 따라 데살로니가(Thessalonica)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BC 168년 로마에 의해 정복된 후로 로마속국이 되었고, 그 지방 온 지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바울 당시에도 약 20만에 이르는 큰 도시였다고 합니다. 대부분 희랍인들이었지만 역시 많은 로마인들과 비록 소수이지만 강력한 그들의 지역사회를 이루고 있는 유대인들과 그들 회당들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제2차 전도여행에 오른 사도 바울과 실라 일행의 목표는 소아시아 전 지역 복음전파였습니다. 무시아에 이른 그들은 소아시아 북서쪽 흑해연안에 위치한 비두니아(Birthynia)로 향하기를 원했지만 그러나 주의 영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에서 드로아 항구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바울은 그날 밤 "한 마케도니아 사람이 서서 이리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라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행 16:9). 바울은 이를 주의 뜻인 줄 깨닫고 곧 그들은 드로아 항을 건너 마케도니아 지역 그 첫 성인 빌립보에 당도하게 됩니다. 이로서 우리 주님의 복음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지역으로 확산되는 그 첫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교회 등 마케도니아지역 교회 등이 세워집니다. 


  사도 바울은 어느 지역이든 유대회당을 먼저 찾아 주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역시 바울은 그곳 유대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문 기간은 불과 세 안식일 동안 유대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한 것이 전부입니다(행 17:2). 그 회당 구성원들은 물론 주로 유대인들이었지만 적지 않은 경건한 이방 희랍인들도 다수 함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당에서 바울의 복음을 들은 무리들 중 소수의 유대인들과 특히 희랍인들과 여러 귀부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유대인들은 여전히 강하게 그들을 배척했습니다. 결국 데살로니가교회는 이처럼 소수의 유대인들과 대부분의 희랍계 이방인들에 의해 그 기초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곳에 머물 동안에도 손수 천막 짓는 일을 계속하며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고 자신들 일행의 필요를 자비량하는 선한 본을 보였습니다. 복음전도사역의 성공 여부는 입으로 복음을 전파할 뿐만 아니라 친히 자신들의 선한 본을 보일 때 더 확실한 그 결실을 보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인들 역시 복음 전도자들의 말씀뿐만 아니라 그들의 진실 된 삶에 크게 감화를 받았던 것입니다. 마침내 바울이 뿌린 복음의 씨앗은 1년 후, 데살로니가인들의 영혼과 삶 속에서 확실하게 살아 역사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1년 후 그의 서신을 통해 이처럼 자신의 감격을 토로합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주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이는 최대의 찬사입니다. 
  물론 이 지상에 완전한 교회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교회는 분명 모범적이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바울의 이 같은 칭찬을 받을만한 자들로 성장했습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무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work of faith)와 사랑의 수고(labor of love)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의 인내(steadfastness of hope)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하노라."(살전 1:3)


  첫째로 진정한 산 믿음은 반드시 그 삶의 열매로 자신의 믿음을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평생 듣지만 실제로 그들의 삶에는 도무지 변화가 없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믿음과 선한 열매는 불과분의 관계입니다. 포도원 농부가 아무리 땀 흘려 과수들을 가꾸고 돌보아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과수는 아무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경고입니다.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버리시리라."(요 15:2) 그러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삶에는 믿음의 산 역사가 따랐습니다. 


  둘째로 참된 구원은 사랑으로 그 증거를 나타냅니다. 진정으로 구원함을 얻게 된 자들은 이처럼 같은 피로 함께 구속함을 받은 다른 지체들을 아끼고 그들을 돕고 염려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영광을 얻느니라."(고전 12:26). 


  셋째로 진정으로 거듭난 자들은 확고한 산 소망 중에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수많은 시련들은 믿는 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코비드팬데믹 사태가 이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참 믿음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달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악한 세대로부터 우리를 영원히 건져주시기 위해 반드시 다시 오실 소망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살전 1:10).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 같은 산 소망으로 사는 모범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같은 믿음을 진정 사모하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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