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

"주님,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마 18:21) 베드로의 이 같은 질문은 성경 중에 너무나 유명한 구절입니다. 인간은 사랑도 할 줄 아는 아름다운 피조물이지만 또한 남을 지독히 미워할 수도 있는 매우 악한 심성을 지닌 피조물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분함은 세월이 지나면 잊을 수도 있지만 마음에 받은 그 상처는 그리 쉽게 잊어지지 않고 용서하기도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 쉽게 다른 형제들에게 물리적인 행동이나 혹은 심한 말로 상처를 입히고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악한 죄인지를 바로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judge)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standard of measure)으로 네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마 7:1-2) 


  이는 인간의 위선을 경고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경고입니다. 위선자들은 자신들의 결점을 깨닫지 못하는 눈먼 소경들과 같습니다. 자신들의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log)는 깨닫지 못하고 다른 형제의 눈 속에 티(speck)를 비판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비판하려거든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완전한 인간은 그 아무도 없습니다. 톨스토이도 "우리에게는 남을 책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라고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과연 죄는 몇 번이 용서해야 될까요? 탈무드에 의한 교훈에서 유대 랍비들은 "죄는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일곱 번까지 용서하리이까?"라고 주님께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일곱 번 뿐만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계산법으로는 490번까지 용서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궁극적 의미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용서하라."는 뜻이 더 옳은 해석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비유로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교훈하셨습니다. 


  장차 천국은 마치 임금이 그 종들과 결산하는 것과 같다 하셨습니다. 제일 먼저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이끌려 나왔습니다. 금 1달란트는 약 34kg의 가치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빚의 액수가 일만 달란트라니 그 액수란 능히 우리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어마어마한 액수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같은 빚을 갚는다는 것은 그 종에게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남은 모든 재산을 다 내놓으라고 명했습니다. 그 때 종은 임금 앞에 엎드려 이처럼 호소했습니다.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그러나 주인은 자비한 분이었습니다. 용서를 비는 그를 불쌍히 여겨 그의 모든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성경에서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는 무한한 자비를 뜻합니다.

이 종은 이 같은 주인의 은혜를 입은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의 빚을 다 탕감 받은 자가 법정을 나가다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났습니다.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었음으로 약 3개월간의 품삯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자신이 탕감 받은 액수와는 비교도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신의 동료 빚쟁이의 멱살을 잡고 당장 빚을 갚으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제발 참아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를 감옥 안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이 같은 사실이 임금에게 알려졌습니다. 임금은 급히 그를 자신 앞으로 소환하도록 명했습니다. 그리고 엄한 책망이 내려집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그리고 임금은 노하여 그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옥에 그를 가두라 명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그 결론입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또한 골로새서에서도 이 같이 교훈합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 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3-14)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용서받아야 마땅한 자들이거나 혹은 은혜로 그 같은 모든 죄를 이미 용서함 받은 확신을 가진 자들입니다. 또한 우리가 잊지 말 것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는 다른 자가 아닌 바로 저와 여러분들 자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 대신 그 모든 죄 값을 십자가로 다 지불해 주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그는 오신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이 같은 거듭난 자들은 이제 "마음으로 뜨겁게 형제를 사랑하라."(벧전 1:22-23)는 주님의 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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