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 고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실제로 그것이 심한 것이든 혹은 적은 것이든 모든 고통들(pains)은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의 가시와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피우스 교황의 말은 매우 의미 있습니다. "지상의 낙원을 잃은 이 후 우리 인간들이 거하고 있는 정원 안에는 근본적으로 죄로 인한 쓴 뿌리가 끊임없이 돋아나 항상 우리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그런데 이 같은 고통에 대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그 한 부류는, 그 같은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 그의 위로를 구하게 됩니다. 반면에 다른 한 부류는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 같은 고난을 허용하는 하나님은 부당한 분이라는 태도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한 소경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즉각적으로 주님께 이처럼 묻습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요 9:2) 그러나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인간의 고통의 근본 근원이 죄로 말미암은 사실을 그가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고통은 당하는 자마다 반드시 자신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닌 사실도 분명 말씀하신 것입니다. 의로운 욥도 고통은 당하였으며 위대한 주의 사도인 바울 자신도 육체적 고통을 평생 안고 살았습니다. 의사였던 누가가 늘 그의 곁에 함께한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엄연히 자신의 죄의 결과로 고난을 당한 자들도 분명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38년간이나 반신불구자로 누워 있던 베데스타 연못가의 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를 고쳐주신 후 이 같이 말씀하십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5:14)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 의미는 그 병자의 죄의 원인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이처럼 죄는 무서운 고통을 가져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많은 아까운 젊은이들이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으로 인하여 요양소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형무소에서 고통을 당하는 죄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 사례를 본 바대로 경건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고통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 같은 고통들은 영적으로 우리들에게 축복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은을 세공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순은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반드시 뜨거운 용광로에 물건을 넣고 그 속에서 찌꺼기들을 걸러냄으로 자신들이 찾고자 하는 순전한 은을 마침내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6-7) 의로운 욥도 현재의 자신의 고난이 장차 그의 믿음의 영광을 위함임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처럼 놀랍게 고백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
이것이 바로 자신의 고통에 대한 믿는 자들의 바른 자세입니다. 


  첫째로 고통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 줍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항상 온전한 교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또한 자신은 지난 날 고통이 없던 때를 진정 감사하며 살았는가? 


  둘째로 자신에게 어떤 영적 유익을 주시려고 고통을 주시는가 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고통이 항상 불행한 것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신의 자녀들을 언제나 바로 이끄시기 위해 사랑의 징계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만일 그 같은 징계가 없으면 그는 참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사생자(불신자)입니다(히 12:7).


  셋째로 이 땅에서의 고통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고통의 아픔과 눈물이 없다면 하늘나라의 이 같은 위로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영원히)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애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지나 갔음일러라."(계 21:4)


  넷째로 죄 없으신 우리 주 예수께서도 친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이는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죄 때문이며 그 같은 형벌에서 우리를 구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슬픔의 인자가 되셨음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 분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은 고통의 세상을 떠날 때 영원한 축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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