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장경각에 기대어
[김민정 박사]
살아있다, 흙의 숨결 꿈틀대며 숨을 쉰다
뜨거운 불길 속을 맵차게 날아오른
새 떼가 날개를 접고 에둘러 앉아 있다
장대비를 머금느라 낮게 뜬 먹구름아
가만히 있지 못해 철벅대는 마음들아
한순간 부대낌 같은 눈물은 벗고 가라
헛되이 휘둘렸던 세상일 던져두고
한결같은 겉과 속을 오롯이 필사할 때
천둥도 한번은 울어 제 뜻을 알려 준다
남과 북 나눔 없이 바람은 오고 가고
동과 서 구별 없이 굽이치는 말씀 있어
어둠을 벗어버리면 꽃밭이 따로 없다
-졸시, 「장경각에 기대어」 전문
입춘도 지나고 대보름도 지난다. 매서운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겨울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리 추워도 절기 앞에 계절은 순리대로 흘러가고 있다. 매서운 한파 속에서 며칠 전 제28대 (사)한국문인협회 임원선거가 있었다. 전국에 퍼져 있어 그 회원 수가 15,600명에 이르고 지회지부도 188곳이나 된다. 그 역사도 60년이 넘어 한국에서 가장 정통성, 역사성이 있는 거대한 문학단체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김호운 소설가가 이사장으로 당선되었고 동반 출마한 7명의 부이사장 중 한 사람으로 필자도 부이사장으로 당선되었다. 4년 전 (사)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으로 당선되었을 때에는 시조분과에만 한정하여 신경을 쓰면 되었지만, 이번에는 10개나 되는 전 분과를 대상으로 해야 했기에 훨씬 많은 신경이 쓰였다. 메일, 문자, 카톡, 전화 등으로 후보들에게 우리 팀을 알리고 지지를 부탁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회원들은 우리 편만 응원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편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전화를 하면 엄청 화를 내는 분도 계셨고, 밤늦게 카톡이나 문자했다고, 바쁜 데 문자나 카톡했다고 야단을 치는 분도 계셨다. 그렇다고 후보 알리기를 안 할 수도 없어 계속하자니 너무 힘들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친절하게 전화를 받는 분이 많았고, 고생한다며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훨씬 많아서 우리나라 전화 문화가 꽤 성숙해 있구나 하고 흐뭇해하기도 했다.
하나를 새롭게 탄생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새삼 경험하기도 했다. 껍질을 깨고 병아리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병아리 자체가 안에서 힘을 주고 깨어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깨면 병아리가 되고 남이 깨면 오므라이스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을 또 한 번 경험하게 되었다.
이제 선거는 끝났고, 모두가 하나로 뭉쳐 또다시 (사)한국문인협회의 발전을 위해서, 문학을 존중하고 문인을 존경하는 사회를 위하여 노력해 가야 할 것이다. 지난해 둘러보았던 통도사 경내 장경각에서 성파 스님이 만든 도자로 구워낸 대장경을 보면서 참으로 감탄했었다. “남과 북 나눔 없이 바람은 오고 가고/ 동과 서 구별 없이 굽이치는 말씀 있어/ 어둠을 벗어버리면 꽃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로 화합하여 멋진 한국의 문단을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라 노래한 나짐 히크메트의 시 「진정한 여행」을 조용히 외우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