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생각을 멀리 보내는 계절

[권영상 작가]

계절이 삼동에 와 있다.

찬바람이 온종일 거칠다. 건너편 산, 벌거벗은 나무숲이 음험한 비명을 지르듯 울부짖는다. 새파란 동천에 가득한 건 바람 소리뿐 처마 끝 풍경소리마저 은은한 멋을 잃었다.

뜰 마당 배롱나무 가지를 감싸준 보온 테이프가 풀려 나부낀다. 끈을 찾아들고 나가 다시 감아주고 묶는 그 짧은 사이, 냉한 바람에 온몸이 언다. 바람은 하루 종일 대지를 얼려 꾹 침묵하게 한다. 삼동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은 험하기만 하다. 

여기는 구름 한 점 없는데 제주와 남쪽 도서지방, 울릉도엔 어제부터 눈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오늘 오후면 내가 머무는 이곳에도 적지 않은 눈이 내린단다.

문단속을 한다. 커튼과 문틀에 벨크로 테이프를 붙여 바람 들어올 틈을 막고, 뽁뽁이 붙인 창문에 남은 뽁뽁이를 한 겹씩 덧붙인다. 아늑하긴 하나 세상과 두절된 듯 고적하다.

휴대폰 문자 수신음이 들린다.

멀리 남쪽 강진에 사는 친구로부터 안부 메시지와 함께 눈사람 사진이 왔다. 광주에 집을 두고 강진에 내려가 글을 쓰는 친구다. 그도 벗이 그리운지 말동무할 눈사람을 집 마당에 데려다 놓았다. 그 너머로 하얀 눈 풍경이 보인다.

강진에 눈 내렸다면 지금쯤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도 눈에 덮여있겠다. 다랑쉬오름도, 서귀포 귤밭도, 바다 건너 외로운 문섬, 모슬포 항 빈 배들도 소복소복 눈 맞고 있겠다. 큰엉길에 붉게 핀 동백꽃도, 그 숲에서 울던 동박새들도 눈 맞으며 조빗조빗 울고 있겠다.

나는 친구에게 4월이 오면 강진에 내려가고 싶다는 문자를 보낸다. 오전엔 운동 삼아 길을 걷고, 오후엔 바다에 나가 조개를 주워온다는, 그가 사는 그곳을 한번 보고 싶다. 4월이면 보리가 푸르고 유채꽃 노랗게 피던 옛날의 남도 들판이 떠오른다. 나는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그 들판을 달려보고 싶다. 그는 자동차 운전도 할 줄 모르고, 세탁기를 돌릴 줄도 몰라 세탁은 빨래판에 손으로 하고, 읍내에 갈 때는 자전거나 마을버스를 타고 간다고 했다.

저녁을 해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건너편 김 씨 아저씨네 소가 우렁우렁 운다. 

시계를 보니 밤 8시다. 시골의 밤 8시는 깊고 물속처럼 고요하다. 8시면 여기도 눈 내린다고 했는데 김 씨 아저씨네 소들이 등허리가 시린가 보다. 가을에 목공일을 부탁드리러 갔을 때 본 그 댁 황소가 생각난다. 

설거지를 마치고 밖을 내다보니 사납게 불던 바람도 그쳤다. 대신 어젯밤부터 유난히 밝던 보름달빛이 흐리다. 남쪽에 내린다는 눈이 구름을 이끌고 벌써 이쯤에 당도하는 모양이다. 한번 울기 시작한 소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어딘가 허전한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어디 먼 데에 두고 온 그리움이 일어나는지 커다란 울음소리가 사뭇 마음을 후빈다.

깊은 산중에도 눈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지금쯤 거기에도 밤눈이 내려 쌓이고 있겠다. 눈 내릴 기미를 알아채고 몸을 숨긴 산짐승들도 이 밤 추위를 이겨내려고 한번 어흥! 울어보겠다. 그러다가 제 목소리 어딘가가 허전해 그만 깊은 생각에 빠지겠다.

내가 아는 그 별에도 지금쯤 눈 내리고 있겠다. 계곡에도 거친 분화구에도 밤눈이 차곡차곡 내려쌓이겠다. 별들을 보살피느라 별을 건너뛰던 별지기 아이도 이불을 펴고 앉아 이곳 지구별까지 생각의 촉수를 날리며 우주를 더듬고 있겠다. 

겨울은 보이지 않는 먼 그곳으로 생각을 날려 보내고, 그 생각이 돌아오기를 밤늦도록 기다리는 계절이다. 그래서 밤이 깊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