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나무야! 이제야 이름 불러 미안해

[김재은 대표]

내가 나이가 들어가는구나를 느끼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휴대폰에 글자를 쓸 때 자꾸 다른 자판을 누르는 것,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의 얼굴은 생각나는데 이름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 것. 특히 모임에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둘 다 작은 스트레스를 주곤 하는데,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흔쾌히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고 나만의 증상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름 이야기를 하자니 떠오르는 시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꽃/김춘수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어릴 적 희미한 기억을 소환해 보면 누가 나의 이름을 부르면 덜컥 겁이 났던 시절이 있었다. 작고 힘이 약해 그랬을 수도 있고, 이름 대신 너, 나, 야 같은 호칭이 일상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기도 하니 세상이 변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변한 것인가.
바로 얼마 전 제주의 숲에 간 적이 있었다.
산양큰엉곶, 고사리 숲, 쇠소깍 숲, 한라산 숲까지... 오랜 시간 나무를 사랑하고 공부해 온 사람들 따라다니며 여러 나무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그냥 지나친 나무들이 선명하고 정겨운 모습으로 내 품에 안겼다.
종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조록나무, 예덕나무, 올벚나무, 청미래덩굴, 참빗살나무, 이나무, 먼나무, 녹나무, 참꽃나무, 새덕이, 비죽이, 북가시나무, 후박나무, 검양옻나무, 회잎나무, 마가목, 시로미와 눈향나무까지...
돌아서면 그게 그것 같긴 하지만 이름을 알고 불러주니 ‘다른 존재, 새로운 존재’가 되어 내 앞에 서 있는 나무 아이들이 얼마나 살갑게 느껴지던지.
시인의 말대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될 것이 아닌가.
그러니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울 터.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 가을, 사랑이 고픈 누군가를 사랑하기 딱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