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까치들 우정에 나도 끼어들다

[권영상 작가] 

오후엔 시간을 내어 마을 길을 걷는다. 코로나 이후 습관이 됐다. 운동이라기보다 주변으로 밀려오는 자연과의 접촉쯤이라는 말이 옳겠다.

아파트 후문을 나서면 느티나무 오솔길이다. 느티나무숲에 불티처럼 봄이 날아오고, 매미 우는 여름이 오고, 어느 날 문득 눈 내리고, 춥고, 바람 불고, 그러는 사이 느티나무 속잎 피는 봄이 다시 오는 길이 그 길이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있고, 거기에 커다란 분수가 있다.

나는 종종 그 분수를 찾는다. 분수는 잘 다듬어진 개활지같이 넓은 공간 안에 있다. 거기 서서 뭉게구름을 바라보는 게 좋고, 붉게 번지는 저녁노을을 보거나 어두워지는 하늘을 날아 귀가하는 새떼들 보는 게 좋다.

마침 소나기 지나간 분수대를 찾았다. 늘 겪는 거지만 인적이라곤 없다. 서울에서 이만한 한적함을 만난다는 게 좋다. 분수대의 고요한 물 위에 흰 구름이 떠가고, 그 위로 소금쟁이들이 껑충거리며 동그란 물주름을 만든다. 번져가는 물주름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음이 소년 적으로 돌아가듯 아늑해진다. 요렇게 작은 소금쟁이로부터 위안을 받다니!

그 무렵이다. 분수대 저쪽 편에 까치 한 마리가 물속에서 첨벙거린다. 연일 폭염이니 물속에 들어가 몸을 식히나 보다 했다. 그러나 자꾸 보니 그게 아니다. 어쩌다가 분수대 물에 빠진 모양이다. 분수대 높은 턱을 오르려고 날개를 퍼덕이지만 턱이 너무 높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번에는 나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어 분수대 턱을 따라가며 펄쩍거린다. 근처 까치들이 분수대 턱에 날아와 물에 빠진 까치를 들여다보며 뭐라 뭐라 말한다. 힘내! 지켜줄게! 날갯짓을 더 크게 해 봐! 뭐 그런 말 같았다. 어떤 녀석은 물에 빠진 까치를 붙잡아볼 요량으로 발을 내뻗어본다. 또 어떤 녀석은 훌쩍 날아올라 두 발로 까치를 붙잡아 올리려 해 본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들의 우정이 느껴진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집을 보수하느라 지붕에 못질을 한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뒤 다시 보수를 하기 위해 지붕을 뜯었는데 거기 못에 박힌 도마뱀 한 마리가 살고 있더라는 거다. 몇 달이나 살 수 있었던 건 친구 도마뱀이 오랫동안 먹이를 물어 날랐기 때문이라는, 도마뱀의 우정이 떠올랐다. 

까치들 또한 지금 내게 그런 저들의 우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물에 빠진 까치 쪽으로 다가갔다. 안절부절못하던 까치들이 아, 살았다 하는 표정으로 근처 풀밭으로 몸을 피한다. 물에 빠진 까치는 지쳐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포기한 듯 날갯짓마저 멈추었다. 나는 분수대 턱에 배를 대고 엎드려 분수대 안을 향해 손을 뻗으며 안심시켰다. ‘건져주려고 그러는 거니 무서워하지 마라’하며 까치의 자그마한 등을 가만히 잡아 올렸다.

그리고는 얼른 분수대 밖 풀밭에 내려놓았다. 안도하는 빛이 역력했다. 무거운 몸으로 일어서더니 온몸에 밴 물을 털었다. 깃털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걸 보고 나는 돌아섰다. 일부러 나를 외면하던 까치가 돌아서는 나를 흘끔 본다. 고마운 눈빛이 일순 보인다.

이쯤 걸어오다 돌아다보니, 응원을 보내던 까치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그걸 보며 나는 가던 길을 그대로 걸었다. 걸어가며 그들이 모여 또 어떤 우정을 발휘할지를 생각하려니 웃음이 났다. 그들의 우정에 작으나마 나의 손길이 보태진 이 인연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