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이면(裏面)을 생각하다

[김재은 대표]

이른 아침, 산책길에 나섰다. 어둔 느낌이 아직 남아있지만 시간이 가면서 시나브로 만물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멤버 교체된 들꽃들도, 짙푸르러 가는 나무들도, 삼삼오오 어울리는 까치나 참새들도 보란 듯이 기지개를 켜고 하루를 시작한다. 무엇 하나 활기차지 않은 게 없다. 보는 사람까지 절로 힘이 솟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 내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이 실제이고 전부일까? 따져보면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데. 아니 내가 아는 것이 눈곱만큼이라도 될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에만 집착해 온 내 모습이 보인다. 깨달은 성자가 말하기를 제행무상, 모든 것은 다 변해간다고 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영원하지 않고 시시각각 변해가기에 그 무엇에도 집착하거나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수천 년 전 성인은 이미 간파했는데 지금 우리는 작은 것 하나에도 끄달려 구속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그런 삶의 이치와 실상에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삶의 자유가 살면서 나에게 깃든다.

여기서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다. 이면(裏面)이다. 사전적으로는 보이는 면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보이지 않는 면(속) 또는 사물의 보이지 않는 뒷면을 가리킨다고 되어있다. 판소리에서는 사설 혹은 음악의 리얼리티(사실성)를 뜻한다고.

눈에 보이는 화려한 꽃, 산해진미, 눈부신 미모의 여인 등도 그 이면에 눈앞의 그것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꽃은 끝내 시들어갈 것이고, 산해진미 또한 끝내 배설될 것이고, 그 아름다운 여인도 언젠가는 초라한 노파가 될 것이다. 

무엇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주장하거나 지금 눈앞의 즐거움에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이면의 존재와 실상에도 작은 눈길을 주자는 것이다. 그러면 탐욕과 화냄과 어리석음의 늪에 빠질 가능성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 나를 비난하고, 몰염치와 몰상식한 행동을 하더라도 봄에 싹이 트고, 여름에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엔 예쁘게 물들었다가 겨울에 낙엽 되어 떨어져 버리는 이치를 떠올리면 어떤 상황에서도 조금은 더 여유 있는 대처가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은 다 변해가고, 보이는 것 너머의 이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느낄 때 삶의 자유가 한 뼘쯤은 더 넓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눈앞의 어떤 결과로 인해 고민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도 많이 누그러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 눈앞의 통장의 숫자, 형식, 체면, 겉치레 등 어떤 것도 보여지는게 전부가 아니다. 오감의 반영인 존재에는 반드시 이면이 있기 마련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책에도 보이지 않는 행간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다른 삶,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면 보여지고 들려오고 느껴지는 어떤 판단이나 생각, 체면과 형식 등을 벗어나 이면의 실상까지 헤아리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그러할 때 온전한 자유, 온전한 나로서의 삶이 펼쳐질 것이다. 

매일매일 하는 산책이며 걷기 명상이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들이 옆구리를 찌르고 삶을 자극하니 참 좋다. 코로나로 인한 고통, 관계 속에서 몰려오는 스트레스 등을 살펴보면 삶엔 크고 작은 어려움이 쭉 이어진다. 그럴 때마다 지금 보이는 삶 너머를 살짝 기웃거려보자. 이면(裏面)지에 낙서하듯이.

그럴 때마다 뜻밖의 선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면에 대한 단상도 그중 하나이다. 짙어가는 녹음 속에 여름이 깊어간다. 이렇게 살아있는 삶이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