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우리의 삶이 무익하지 않게 하소서

[한희철 목사]

이문재 시인의 시 ‘오래된 기도’를 읽으면, 우리가 기도라고 생각하지 못한 많은 순간들이 기도였음을 공감하게 됩니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순간까지도 기도라 하고 있으니까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런 순간에 가졌던 마음들이 기도에 가까운 마음이었다는 것을 따뜻함으로 깨닫게 됩니다. 

‘오래된 기도’ 속에 담긴 기도의 순간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하나하나를 생각하면 저녁 하늘에 별 돋듯 마음이 그윽해집니다. 

이따금씩 ‘어느 날의 기도’를 적고는 합니다. 너무나 익숙해서 마음이 담기지 못하는, 상투적인 기도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짧은 문장에 담아내고는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당신의 쟁기 날이 닿지 않은, 오늘 우리는 황무지입니다.’ ‘아팠던 만큼 웃게 하소서. 흔들렸던 만큼 꿈꾸게 하소서.’ ‘제게 필요한 것은 촛대가 아니라 빛입니다.’ ‘당신이 저를 부르실 때, 제가 제 이름을 몰라 대답하지 못하는 일 없게 하소서.’ ‘당신의 우물은 너무 깊어 내 두레박이 닿지 못합니다.’ ‘종이를 넘기다가 손을 베었습니다. 내가 입힌 모든 상처를 용서하소서.’ ‘어설픈 해갈 구하기보다는, 정직한 목마름 견디게 하소서.’

며칠 전에 드렸던 기도는 이랬습니다. ‘대단한 것을 꿈꾸지 않습니다. 다만 무익하지 않게 하소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던 날이었습니다. 마음은 무겁고 어두운데, 그러면서도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버겁게 여겨졌습니다. 

때마침 읽고 있던 책에서 만난 ‘티쿤 올람’에 대한 내용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티쿤 올람’은 유대인 교육의 기초가 되는 말로, ‘티쿤’은 ‘고치다’라는 뜻이고, ‘올람’은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13세 생일이 되면 ‘바르 미츠바’라고 부르는 성인식을 갖게 되는데, 성인식에서는 랍비와 문답을 합니다. 랍비가 “네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 물으면 “티쿤 올람에 기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티쿤 올람에 기여하는 삶이란 내가 와서 세상이 더 좋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너는 이 세상을 네가 태어났을 때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가야 한다.”는 요청이지요.

어디 성인식을 갖는 유대인뿐이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우리 모두 티쿤 올람의 삶으로 초청을 받은 것이겠지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삶이나,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은 삶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대단하진 않아도 우리의 삶이 다만 무익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