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여행의 시간은 온다

[이규섭 시인] 

코로나19가 여행자의 발목을 잡은 지 1년 넘었다. 지난해 3월 이집트 여행 일정을 잡아놓았다가 취소된 뒤 기약 없이 기다린다. EBS(교육방송)의 세계테마기행도 발목이 잡히긴 마찬가지다. 방송된 내용을 테마 별로 묶어 재방송한다. 여행의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제다.

거친 야생과 순수의 삶이 현존하는 지구촌의 오지 등을 발품 팔지 않고 소파에 기대어 느긋하게 둘러보는 여유를 누린다. 간접 여행의 행복이다. 이미 다녀온 여행지를 만나면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해외 투어는 귀족 교양수업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다. 17∼18세기 상류층 자제들이 교양을 쌓으려 정해진 코스를 다녀오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ㆍ유럽대륙 순회여행)가 대표적이다. 여행객을 가리키는 ‘Tourist’라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됐다. 특히 영국 귀족 자제들은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 나폴리 등지를 찾아가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문화를 직접 경험하며 견문을 넓히고 교양을 쌓았다.

해외여행을 질병 치료에 활용하기도 했다. 일반 여행객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여행은 병 고치는 약’이라는 주장이 대두됐다. 처음엔 우울증 치료를 위해 의사들이 여행을 권장했고, 18세기 들어 여행은 거의 만병 통치술로 여겼다. 당시 의학적 기록에 따르면 질병의 원인은 나쁜 물과 공기다. 공기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 맑은 물을 마시면서 치유 효과를 톡톡히 봤을 것이다.

우리나라 해외여행 자유화는 올림픽을 치른 이듬해인 1989년에야 이루어졌으니 만시지탄이다. 일반인이 해외에 나가려면 기업의 출장, 학생의 유학, 해외 취업 등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가능했다. 1983년엔 50세 이상 국민에 한하여 200만 원을 1년간 예치하는 조건으로 연 1회에 한해 관광 여권을 발급하는 제한적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되어 서민들은 엄두도 못 냈다.

해외여행 자유화로 배낭여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여행작가라는 이름의 직업이 생겨날 정도로 여행의 열풍에 휩싸였다. 퇴직 이후 해마다 해외여행을 하겠다는 버킷리스트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켰다. 여행사가 호황을 누리며 폭발적으로 늘었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는 관광객들이 세상을 흉측하게 만든다는 ‘플뤼그스캄(Flygskam)’이라는 신조어가 2018년에 등장했다. 스웨덴어로 ‘비행기의 수치’라는 뜻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비행기로 이동하며 빠른 속도로 세계의 자연을 망치고 사람들의 삶을 어지럽힌다는 여행의 역기능이다.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이 급격히 줄면서 자연 생태계가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운하 물이 맑아졌고, 아이슬란드 하천에 물고기가 늘었다는 보도다. 여행의 발이 묶이니 환경은 좋아졌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잡는 백신이 위력을 드러내면서 이스라엘은 마스크를 벗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미국도 ‘굿바이 마스크’를 선언하고 실내에서도 쓰지 않아도 된다니 부럽다.

패닉 상태에 빠졌던 항공사들은 ‘여행의 시간이 온다’며 서비스 확대로 고객 선점 경쟁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여행의 시간이 자유와 낭만을 싣고 빨리 우리 곁에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