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어느 100년 인생

[김재은 대표]

봄꽃들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매화가 바통을 개나리에게 넘길 즈음이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간 혹한이 엊그제 같은데 슬며시 봄이 찾아왔다.

메마른 대지와 나뭇가지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신기함 그 자체이다. 또 시간이 지나면 꽃의 시대가 가고 녹음(綠陰)의 시대가 올 것이다.

자연도 세상도 끊임없이 변화해간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덧없다’라고 하기도 하고 무상(無常)이라고도 한다. ‘덧’이 ‘늘상 있는 흔한 것’이라는 뜻이니 ‘덧없다’는 그런 것이 없다는 뜻이렷다. 그래서 불교 제1의 근본 교의가 제행무상(諸行無常) 인가 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모든 게 다 변해간다 해도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곁에 우뚝 서서 나를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어딘가에 하나쯤 있지 않을까?

작년 가을 코로나 시대의 답답함을 덜고자 서울 나무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회현동 은행나무를 시작으로 인사동, 조계사와 수송공원, 헌법재판소, 정독도서관, 창덕궁까지 걸으면서 회화나무, 향나무, 백송, 느티나무 등 수백 년을 굳건히 견뎌온 ‘살아있는 전설’들을 만났다. 거기엔 무상함보다는 든든함과 듬직함이 가득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사설이 길었을까. 답을 하기 전에 100년을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나무들은 수백 년을 거뜬히 살아가는데 사람들은 고작해야 100년이니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니 엄청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일제 강압기, 2차 세계대전, 8.15광복, 한국전쟁, 5.16과 4월 혁명,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 IMF와 금융위기, 그리고 첨단 디지털정보 시대까지…

그 100년을 넘긴 김형석 교수는 60세부터가 가장 소중한 때이고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고 말하지만 건강과 밥줄, 마음 관리를 못하면 어쩌면 재앙이 시작될 수도 있다.

여기 100년 가까이 건강하고 여여한 모습으로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온 큰  나무 같은 인생이 있다. 훤칠한 키와 준수한 용모에 건강한 삶의 의식과 시대정신까지 가진 어른이 곁에 있다. 

몇 해전 넘어졌음에도 고관절 수술을 통해 회복하셨지만 지팡이의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바깥출입을 자제하는 자존감은 당신의 살아온 힘인지도 모른다. 

양보 받는 삶보다 존경받는 삶을 기꺼이 살아오신 당신이 얼마 전 97번째 생신을 맞았다. 또래 친구들은 물론 후배 세대들도 대부분 이미 지구별을 떠났거나 요양병원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생일케이크의 촛불을 끄는 모습에 ‘100년’의 건강함과 여여함이 그대로 깃들여 있었다. 푸릇푸릇한 봄날, 삶이 고맙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추운 날 따뜻한 햇볕이 되고 여름 땡볕의 그늘이 되어주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어른, 양산 아버님의 강녕하심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