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소매치기와 ‘표심치기’

[이규섭 시인]

소매치기를 처음 당한 건 50여 년 전이다. 경남 마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경북 안동으로 가던 중이다. 버스가 대구에 정차하자 40대 전후의 남성 2명이 타더니 1명은 내 왼쪽 빈 좌석에 앉고 1명은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 버스가 출발 후 얼마 지나자 앞에 섰던 남자가 나를 보며 “양복 오른쪽에 뭐가 묻었네요”한다. 참 친절하다 생각하며 양복 깃을 툭툭 털었다.

대구시를 벗어나가 전 정차한 정류장에서 일행 두 명이 내린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고 허전하여 양복 주머니를 확인하니 지갑이 없어졌다. 양복 안주머니가 예리하게 찢겨져 있다. 순간 머리가 띵하며 하얘진다. 서 있던 사람은 바람잡이, 내 옆에 앉았던 사람은 기술자다. 바람을 잡아 시선을 돌리는 순간 면도칼로 안주머니를 째는 이른바 ‘안창따기 수법’에 당했다.

손목시계를 낚아채는 ‘짱채기’, 목걸이를 채가는 ‘굴레 따기’ 등 용어는 들어봤지만 실제로 당하니 황당하고 어이없다. ‘날치기, 들치기, 새치기, 아리랑치기, 퍽치기’ 등 ‘치기 절도’가 많았던 시절이다. 며칠 뒤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주소로 빈 지갑과 신분증을 우편으로 보냈다. 지갑이 멀쩡하고 주민증 재발급 신청을 안 해도 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난민과 집시가 많은 나라의 유명 관광지엔 요즘도 소매치기들이 설친다. 가이드가 주의를 당부해도 가끔 일행 중에 소매치기를 당해 곤욕을 치른다. 외국의 소매치기는 가방이나 휴대폰 낚아채기, 오토바이 날치기, 취객털이, 뒷주머니 지갑빼기 등 다양하다. 청소년들이 다가와 말을 걸거나 서명을 해달라면 외면하고 가는 게 상책이다.

‘소매치기’ 어원은 조선시대 때 생겼다. 도포나 두루마기 등 웃옷의 옷소매 안에 돈이나 귀중품을 넣어 다니던 시절이다. 외출 때 도포나 두루마기를 입을 정도면 돈푼께나 있는 양반이나 부자들이니 표적의 대상이다. 옷소매를 쳐서 채간다고 해서 생긴 용어다. 일제 강점기 때는 소매치기를 ‘스리’라 했고 소매치기꾼을 ‘스리꾼’이라하여 직업군 반열에 올려놓았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설치던 소매치기 범죄가 사라지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발생 건수가 2011년 2378건에서 2019년에는 535건으로 크게 줄었다. 매일 6.5건 일어나던 범죄가 하루 1건 수준(1.46건)으로 격감했다. 소매치기가 사라지는 가장 큰 원인은 현금 대신 신용카드 사용이 늘면서 설자리를 잃었다.

모바일 기기 등을 통한 결제가 늘었고, 카드 거래 내역이 기록되고 결제되면 곧장 주인에게 알려지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훔친 카드 사용이 어렵게 됐다. 거리 곳곳에는 CCTV가 촘촘하게 설치돼 있고, 대부분 자동차에는 블랙박스가 눈을 번득이고 있어 붙잡힐 수 있는 리스크가 커졌다.

소매치기가 사라지니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훔치는 ‘표심치기’가 극성을 부린다. 거간꾼들의 무차별적 폭로와 마타도어가 난무한다. 정치 거간꾼들이 프레임을 씌우고 바람을 잡으면 정치 기술자들은 음모론을 퍼뜨리며 여론을 호도한다. 저질 정치 ‘바람잡이’에 속지 않고 ‘표심치기’ 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깨어있는 의식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