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못도 안 친 달

[한희철 목사]

이따금씩 외진 시골을 찾아가 시간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분주하고 지쳤던 시간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면 스며들 듯 자연을 찾아 기대곤 합니다. 주변의 나무를 모아 아궁이에 불을 때면 마음속의 눅눅함이 지워집니다. 자연은 언제라도 젖 먹이는 어머니와 같아서 어서 오라고, 너도 자연의 일부이니 무거운 짐 내려놓고 그냥 쉬라고, 본래의 자신에게로 돌아가라고 맞아줍니다.  

시골을 찾는 것은 날씨도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언덕길을 오르는 불편이 있지만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누리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마치 어릴 적 아직 돌아오지 않은 엄마를 기다리듯, 마루 끝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와 지붕을 타고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듣는 것은 도시에서 오디오를 통해 음악을 듣는 것과는 다른 감흥입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오랜만에 찾는 시골길에 비가 내렸습니다. 불쏘시개로 쓸 나무는 비에 젖었고 습기는 가득하여 아궁이에 불이 잘 붙지를 않았고, 연기는 사방으로 매캐하게 퍼졌습니다. 하지만 도움이 되는 것도 있었습니다. 곳곳에 자란 풀이 쉽게 뽑혔습니다. 주인이 없으면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쑥 자라 오른 망초를 뽑기에 제격이었습니다. 뿌리가 뽑히지 않으면 다시 자라게 되는데, 푹푹해진 흙으로 뿌리까지 뽑히니 마음이 개운합니다. 

비가 오면 꽃을 심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따로 물을 주지 않아도 되니 한결 수월합니다. 꽃이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는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요. 지인에게 얻은 하얀 마가렛을 심었더니 선명한 빛을 발합니다. 온통 초록빛 세상인데 그중 하얀 꽃이 자리를 잡으니 서로가 잘 어울립니다. 사방의 초록빛으로 인해 하얀 빛이 빛이 나고, 하얀 꽃으로 인해 주변의 초록빛이 선명해집니다.

비 내리는 어둠 속에서 개구리울음소리를 듣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빈틈없이 어둠을 물들이는 것이 개구리 소리라니요! 개구리울음소리는 요란하지만 고요합니다. 시끄러운 것 같아도 듣다 보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내리던 비가 언제 그친 것일까요, 밤이 깊어가며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습니다. 사납던 바람도 어느샌가 잠잠해졌습니다. 구름에 가려 있던 둥근달이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개구리울음소리와 환한 달빛이 그럴 듯이 어울립니다. 조명과 연주가 그윽하게 어울리는, 드문 연주회에 초대를 받았다 싶습니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르는 시가 있었습니다. 반칠환 시인의 ‘기적3’이라는 짤막한 시입니다. ‘강풍에 먹구름 쓸려 가는데, 못도 안 친 달이 하늘에 박혀 있다’ 강풍 속에서도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유심히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참 맑고 그윽하구나 싶습니다. 먹구름이 쓸려가는 와중에도 끄떡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달을 두고 ‘못도 안 친’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말이지요. 어지러운 세상, 그럴수록 못도 안 친 달을 닮아야겠다 싶었습니다.​